■待臨 第1主日 「주님의 날」

 

                            ■待臨 第1主日 「주님의 날」

                          다시 오실 그날까지 즐겁고 기쁘게



     대림절 새해 첫날 다해가 시작됐습니다ㅡ.


   11월29일 대림 제1주일입니다ㅡ. 가톨릭 전례력 새해 첫날, 다해가 시작된 날입니다. 4주간으로 이루어지는 대림절 예수의 성탄을 맞기 위해 희망으로 기다리는 기쁨의 시기입니다. 독서와 복음의 주제는 ‘그날’입니다.

   대림절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에 대한 묵상 시간입니다. 주님께서 오시겠다고 정해주신 그 방향을 응시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이 오실 그 날은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아버지만이 아십니다.

   우리는 하느님 때문에 변화된 삶을 기대하며 대림 시기를 뜻 있게 꾸미도록 해야 됩니다. 우리 신앙의 기쁜 소식은 `하느님의 아들(聖子)'예수 그리스도께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님이시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것입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써 그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시는 이 큰 사건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오랜 세월 동안 그에 대한 준비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과 맺으신 옛 계약의 예식과 희생제사, 표상과 상징들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집중돼 있으며 모세와 그 후계자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예고하셨습니다.


    ■「예수」: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는 의미ㅡ.


   하느님의 인간 구원 계획ㅡ. 당신과 본질이 같은 성자(聖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써 결정적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이름은 예수님의 신원(身元)과 사명을 동시에 나타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나자렛에 사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 1,30-33)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심은 하느님께서 일찍이 예언자 나단을 통해 인류에게 주신 약속의 실현입니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2사무 7,14)

   그러나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 자신도 처음에는 그분이 누구인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분의 신원을 분명히 밝혀주는 것은 그 분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영원한 말씀ㅡ


   예수님을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신약성서ㅡ. 요한복음 첫 장은 예수님이 `한 처음에' 계셨고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신데 이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이 생겨났고 또'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곧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영원한 말씀이고 그 말씀은 하느님이며 동시에 하느님을 우리에게 알려준 분이십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주셨다'(요한 1,18)

   토마스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라고 했고 신약성서 전체를 통틀어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품위와 신분과 힘을 갖고 행동하시는 분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모든이의 아버지’, 하느님에 대한 계시의 핵심ㅡ.


   예수님이 계시하신 아버지 하느님ㅡ.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을 받으시다가 당신의 지상 생애의 최후에 이르러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당신의 지상 생애를 오로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데 바쳤다는, 그리고 그것을 완전히 이루었다는 최후의 진술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예수님 자신의 아버지일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시라는 것이 예수님의 하느님에 대한 계시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아빠(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아빠'는 어린 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부르는 매우 친근한 말입니다. 이 같은 호칭은 당시 유다 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지극히 높으신 분, 하늘에 계시는 분으로 밖에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한계를 모르는 자비로 모든 이를 특히 미소하고 보잘것없는 자들을 사랑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느님은 죄인에게 회개를 먼저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당신이 죄인에게 다가감으로써 그를 회개하도록 아무런 조건도 없이 자비를 베푸십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친아들'이심을 입증ㅡ.


   하느님의 자비하심ㅡ. 곧 그 분의 선하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마태 19,16) 라고 예수님은 가르치셨습니다. 하느님의 선하심은 특히 죄인들 위한 자비에서 두드러집니다.

   예수님은 `잃었던 아들'에 관한 비유 이야기(루카 15,11-32)를 통해 못난 자식이라도 애지중지 아끼는 하느님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작은 아들의 방탕이나 큰아들의 불만에 찬 반항, 그리고 세상의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예수님의 절대적 신뢰와 순종은 예수님이 아버지의 `친아들'이심을 입증합니다. 하느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시는 덕분에 우리도 하느님을 감히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나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1요한 4,10)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2코린 5,19)


   ■예수님은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목숨을 바치셨습니다ㅡ.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당신 몸을 바친 예수님ㅡ. 최후의 만찬 중에 이 같은 선물을 미리 보여 주시고 실현하십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루카 22,19)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 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요한 15,13)고 가르치셨으며 당신 자신이 이 큰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사랑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것입니다. 자신을 내어주기 위해서는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사랑을 위해 고통을 기꺼이 수락하신 하느님만이 고통 중에 모든 인간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명에 충실하셨으며 더욱이 임박한 죽음을 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수락하셨다는 점에서 그 죽음은 자발적이고 따라서 희생적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통해 구원받을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께서 당신이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리라는 것을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예고하셨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어주시기 위해 당신이 수난을 당해야 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4-15)


   인간들에 대한 사랑의 희생으로 계명을 완성ㅡ.


   하느님과 인간에게 봉사하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ㅡ. 그 분이 가르쳐주신 사랑의 이중계명(마르 12,19-31)과 일치됩니다. 예수께서는 당신 아버지를 위한 사랑의 순종으로 또 아버지께서 구원하시기를 바라시는 인간들에 대한 사랑의 희생으로 이 계명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 아버지를 충실히 공경하는 데 필요한 순종, 겸손, 항구함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우리가 불리하게 대우받을지라도 정의와 자비의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잘 드러낸 완전한 구원행위였습니다(요한 3,16). 죄로 인해 하느님으로부터 소외됐던 인간은 하느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 실제로 본 다음에야 하느님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 5,8)


   사랑은 죄보다 강하다는 것을 십자가는 말합니다ㅡ


   골고타에 세워진 십자가ㅡ. 예수님은 십자가상의 죽음을 통해 하느님의 충만한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죽음 보다 강하고(아가 8,6) 사랑은 죄보다 강하다는 것을 십자가는 얘기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은 정의와 사랑으로 충만한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십자가 위의 죽음, 이 끔찍한 형벌 방법은 페르시아 인들에 의해 창안됐습니다. 기원 전 519년에 바빌론에서 300명의 반란자들이 십자가에 달려 처형됐다고 합니다.

   이 십자가형을 로마인들이 물려받았습니다. 유다 인들이 볼 때 이는 하느님의 단죄의 가시적인 징표요, 부끄러움과 치욕에 있어서 이 보다 더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없는 궁극적인 것(히브 12,2)을 의미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마르 15,34)하고 외치셨습니다. 이는 시편 22편 첫머리에 나오는 말씀이며 이 기도는 고통을 호소하는 것으로 시작해 그 고통을 들어주시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영광을 노래하는 것으로 마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결코 잊지 않으셨으며, 이 마지막 외침이야말로 패배의 외침이 아닌, 희망의 외침, 승리의 외침이셨습니다.


   십자가는 자비로우신 하느님 사랑의 절정ㅡ


   십자가의 사건은 분명 우리의 구원을 위한 사건입니다ㅡ. 곧 우리를 위한 사랑을 위해 이루어진 가난의 신비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사랑 없이 십자가는 이해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갈라 6,14)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자비로우신 하느님 사랑의 절정ㅡ. 당신 외아들을 내어주신 아버지의 사랑과 당신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교차돼 드러난 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과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교차돼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승화된 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온전히 하느님의 충만하신 사랑으로 인도되고, 따라서 그리스도 교 신앙이 싹틉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미리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에 모 박혀 죽으시고 묻히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구약 전반에 걸쳐 언급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과 구원 약속이 성취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더 이상 죽음 없는 삶에로의 옮겨감입니다ㅡ.


   예수님의 부활은ㅡ. 하느님이 당신 아드님을 통해 인간의 고통을 함께 짊어져 주고 인간의 죄가 불러온 궁극의 비참함인 죽음을 극복해 축복으로 변하게 해주는 아버지로서의 당신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더 이상 죽음이 없는 삶에로의 옮겨감입니다. 부활하신 당신의 육신으로 예수님은 죽음의 상태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다른 생명의 세계로 넘어가십니다.

   예수님의 몸은 부활을 통해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져 영광스러운 상태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삶의 충만이고 역사와 세상 안에서의 적극적이며 능동적 현존이며 새로운 몸으로 영위하는 새로운 삶입니다.

   부활은 십자가 죽음을 완성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죄와 죽음에 대한 최종 승리, 인간을 위한 해방을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죽을 인간의 삶이 죽음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문을 지나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됐습니다.


   ■부활’은 믿음의 바탕이며 신앙생활의 중심이 됩니다ㅡ.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ㅡ.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다시는 죽음이 없는 새 생명에 대한 희망을 안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부활 사건은 우리 믿음의 바탕이며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교우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시어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의 힘으로 여러 사명을 주신 다음 40일이 되는 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 쪽에 앉히셨습니다.”(에페 1,20)는 것은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셨다는 것과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서 `아버지의 완전한 영광'안으로 들어갔다는 것,

   그리고 세상 만물을 다스리며 인간을 구원하는 모든 주권이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그분께도 주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합시다.



by 朴馨 丘 | 2009/11/27 09:29 | 信仰의 神秘 | 트랙백 | 덧글(0)

■아― 그리운 追憶, 그 얼굴.

 

                                 ■아― 그리운 追憶, 그 얼굴.

                      詩는 刹那의 모뉴먼트 이거늘…


   ■銀杏잎 얼룩져 나와 내 안의 잃음으로 외로워ㅡ.


   떨어지다 남은 노리께한 은행잎이 입동(立冬) 싸늘한 바람에 소리 없이 뚝 떨어졌다ㅡ. [백조(白潮)]파 낭만주의 문학 중심 활동가인, 시인이요 소설가인 月灘 朴鍾和의 역사소설 [錦衫의 피]에 묘사된 한 구절이다.

    10월7일 입동ㅡ. 거리는 지금 가로수 은행잎이 얼룩져 나와 내 안의 잃음으로 외롭다…. 이와 달리 金泰吉의 [落葉]은 화사하다.

   ㅡ…의젓하게 노오란 수의(壽衣)에 싸인 몸이 땅 위에 떨어진 뒤에도 소생할 듯이 싱싱하고 아름답다'. 미(美)의 침묵…. 입동의 생리다. 그 때문에 이를 사화(詩化)하고 싶었다.


[詩] 立 冬


안개로 옷깃 여며


파랗게 햇살 비리도록

바람 모아


내 꿈을 날리오.



흰 서리, 젖은 지붕


까치 몇 번 촐싹일 때

긴 꼬리에 갈잎 떨듯


보표(譜表)에 지는 입동...


   ■海外 PEN 會議 때마다 어우러진 友情으로ㅡ.


   은유와 상징으로 제시된 함축적인 표현에는 나의 추억과, 그와 내 안에 행복이 자리한다. 영원한 우정이다. 지금은 가고 없는 시적 synecdoche의 영상! 李佳炯, 鄭漢模, 李廷基 교수….

   해외 PEN 회의 때마다 어우러진 우정으로 다시 점철된다. 문학인의 진실, 그것은 고국을 멀리 떠날수록 서로의 가슴에 우정이 분수로 선율한다.     존경과 사랑, 그 가운데 어느 하나의 선택만으로도 우정은 앞서 간 이를 잊을 수 없게 한다. 낯선 타국에서 가슴 저미도록 고독이 스미는 순간, 골육의 정 이상의 끈끈한 정서를 보내오곤 했다.


   ■兄嫂는 그 뒤 李 敎授 얘기만 나오면


   李佳炯 교수ㅡ. 나와는 한 고향이다. 東京대회 때다. 2인1실 파트너로 한 방에 있게 되면 정이란 무섭게 가까워진다. 나는 淺草의 형수를 불러냈다. 일림(日林) 레스토랑 고바야시(小林)회장이다.

   귀화한 50대의 미망인이었다. 형수는 우리의 숙소 京王플라자 호텔에서 화려한 오찬으로 청요리를 대접했다. 李교수는 東京大 출신이면서 사교계의 미녀 앞에서는 과묵했다.

   그러나 형수를 알고부터 그는 西新宿 밥집에서 저녁마다 `규동'을 먹을 때, 꼬박꼬박 맥주 값을 치렀다. 형수는 그 뒤 李 교수 얘기만 나오면 얼굴부터 붉히곤 했다.


   ■鄭 長官과 닮은 罪(?)로 그런 困辱이ㅡ.


   鄭漢模 교수ㅡ. 우리는 모습이 닮았다. 거리에서나 또는 모임에서 누가 `장관님'이라고 나를 부를 때는 으레 속으로 쿡쿡 웃는다. 鄭 교수와 루가노 PEN 회의 때다. 스위스대표가 초청한 파티에서다.

   다들 홀에 앉았다. 尹慶男 여사와 내가 두 스위스 여성과 안방에서 마시다 말고 홀에 나왔다. 나는 스위스 시인과 단 둘이서만 밴드에 스텝을 밟았다. 鄭교수의 박수가 요란했다.

    음악이 끝나고 마리아는 내게, 누가 형이냐며 부끄러워했다. 그 뒤 문공부 장관에 발탁된 그는, 井邑 內藏寺 PEN회의에 왔다가 은밀히 돌아갔다. 이튿날 나는 아침 식당에서 鄭 장관과 모습이 닮은 죄(?)로 낯모르는 지방 원들로부터 몰려, 그런 곤욕이 없었다.


   하나의 衝擊은 체코 總理초청 晩餐을 끝내고ㅡ


   李廷基 교수ㅡ. 프라하 PEN 회의 때, 1주일 이상 파트너로 2인1실이었다. 李佳炯 교수도 영문학 담당이지만 불어 회화를 했는데, 李廷基 교수 또한 영문학자이면서 독어를 우리말 보다 더 잘했다.

   동유럽의 꽃인가 싶게 그의 능란한 사교성에 매혹돼야 했다. 특히 그를 못 잊어하는 하나의 충격은 체코 총리초청 만찬을 끝내고서였다. 그와 함께 돌아와 숙소에서 코트를 두고 온 것을 알았다.

   나는 버버리와 머플러 얘기를 이 교수에게 들려주며 그냥 서울로 돌아왔다. 그런데 2주일 후 소포가 도착했다. 그가 총리관저에 찾아가 내가 두고 온 의류품을 찾아, 아들이 근무하는 프랑크푸르트 항공회사에서 착실히 부쳐온 것이다.


   豊足한 資料와 메모는 잦은 旅行 經驗의 名作ㅡ.


   PEN club의 해외 문학기행은 그래서 우정 깊은 일화를 남긴다. 생존하는 선배들은 다음 기회가 있겠다. 1970-1995년까지 화려했던 PEN 회원들의 해외 나들이ㅡ. 우리의 신뢰감은 그렇게 또 정열적이었다.

   특히 함께 같은 나라를 두어 번씩 들러도 여성회원들이 몇 차례 동행하기에 무척 친숙해졌다. 그녀들이 돌아와 출간한 시집이나 기행문을 받아 볼 때는 탄복할 수밖에 없다.

    여행 때 8mm 카메라를 내 쪽에서만 사용하는데도 여성들의 풍족한 자료와 메모는 잦은 여행 경험만으로도 최고의 명작을 남길 수 있었다. 확실히 문학기행문은 여성들이 예민한 악기의 솔리스트처럼 남자들을 앞지른다.


   潤氣 있는 過去를 담은 回想의 箱子ㅡ.


   입동이면 물밀어 오는 우정과 행복ㅡ. 글을 쓰는 사람은 자존심이 강한 대로 고독하다. 그러나 나는 앞서의 형들을 먼저 보내고도 고독을 모른다. 아직 행복한 회상에 잠길 수 있어서다.

   회상은 사랑의 힘으로 가능하게 한다. F. 톰슨은 `행복'의 포장을 짓밟듯 이미 지나가 버린 그림자라고 매도했다. 그러나 윤기 있는 과거를 담은 회상의 상자를 소유한 이는 행복하다.

   그리고 그 행복을 깨지지 않게 보관을 잘 하는 이의 글은 마음의 보석으로 많은 팬에게 감명을 일으키게 한다. 독자의 우정 깊은 행복의 반응일 것이다.


   再起의 準備 서두르는 不可視的 內在律ㅡ


   입동과 우정ㅡ. 연관이 있다. 고독으로부터의 도피 아닌, 탈출을 시도하게 해서다. 입동은 우리에게 지난 날 관철해온 용기를 반환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의 조락에서, 오는 봄을 향한 재기의 준비를 서두르는 불가시적 내재율에 주목하게 하지 않는가! 텅 빈 허구에서 울리는 격동의 소리를 게으른 인간이 듣지 못하는 탓이다.

    인간에게서 풍기는 위선과 가식, 열악한 속물근성으로는 위대한 자연의 반전 작용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立冬大安ㅡ! 그러기에 우리에게 보다 신념 깊은 활동을 권유한다. 그 영혼을 충만하게 할 것이다.


        이 글은 ‘그와 내 안의 행복’이라는 표제로 2002.10.7(立冬) nate 「文化時代」에 집필한 추억의 작품이다.

       

by 朴馨 丘 | 2009/11/26 15:58 | 季節의 香氣 | 트랙백 | 덧글(0)

■薔微 100송이의 榮光 ‘作家巴金’

 

                               ■薔微 100송이의 榮光 ‘作家巴金’

                              20世紀 100大 藝術作品」으로  感動케

                               


                                                                        朴馨丘  : 2003/11/22 21:54  작성

   

   ■
無政府主義를 標榜, 바진(巴金)을 筆名으로

   

대륙의 6대 거장(大師)ㅡ 바진(巴金)! 오는 25일 탄생 100년의 화려한 축일을 맞는다. ㅡ`巴老(바 선생)의 100세 생신 날 장미 꽃 100 송이를 보내겠다'던, 주치의 추이스전(崔世貞 上海 華東病院)의 4 년 전 인사말이 현실화됐다.

    巴金, 그러나 지금 그로서는 `하려한 외출'이 어렵다. 현란한 화술로나 장려한 문장으로 표현이 불가능하지만, 추억이 머문 빛나는, 아름다운 눈으로 감격의 환희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읽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의 본명은 리야오탕(李堯棠 1904- ). 四川성 成都 태생이다. 프랑스에 유학(1927)해 중국의 신문화운동을 주도하며  무정부주의를 표방하기 위해 이 경향 작가들 바쿠닌의 첫 자와 크로포트킨의 끝 자를 합성해 바진(巴金)을 필명으로 정하기까지 했다.


    13억 漢子文化圈 屈指의 文學世界를 照明ㅡ.


   그의 시대의 막역한 사이로는 덩샤오핑(鄧小平)을 꼽는다. 출생지와 연령이 같아 각별한 우정을 교환한 것으로 추측된다. 현대 중국문단은 그를 현대문학 최고봉 6대 대사의 머리에 올린다.

   다음으로 魯迅, 郭沫若, 茅盾, 老舍, 曹惟로 이어진다. 백세장수 축하 행사는 憑孫, 李存光, 劉慧英, 李輝, 陳丹晨, 潭洛非 등 많은 문하와 후진이 참여해 그의 생애, 연보, 작품, 서간집, 그의 미학 사상...을 깊게 재조명한다.     특히 도서 전시회는 인민문학출판사 간행 「巴金全集」(1986-94) 모두 26권을 내놓는다. 상하이 작가협회의 찬란한 기획ㅡ. 그의 사진ㆍ도서관 및 「晩年의 巴金」이벤트가 크게 기대된다.

   이는 巴金 개인의 영광 보다 13억 한자문화권 굴지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데 그 의미를 집중하고 있어서다.


   ■「20世紀 100大 藝術作品」으로 讀書層 感動케ㅡ,

 

   대륙문단의 살아 있는 전설, 무정부주의 작가 巴金ㅡ. 대표 작품으로 3 부작 「집(家). 봄(春). 가을(秋)」이 많이 읽혀진다. 그의 창작활동은 왕성할 만큼 활발했으며, 장편 소설만도 20여 편에 이른다.

   1949년 공산정권 수립 이전의 창작 작품은 대개 무정부주의 경향이었다. 문화혁명 기간은 절필로 여행이 잦았다. 老舍 등 많은 문우가 숙청돼서다.      그는 「문혁 박물관」을 사비로 개설해 비명에 간 문우들의 작품과 유물을 거두어 울분을 달랬다. 70년대 이후에는 8년에 걸쳐 써온 짧은 글을 모아 수상록(隨想錄)을 출간했다.

   이 도서는 중국 미디어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예술작품」으로 독서층을 감동하게 한다. 문예지는 ㅡ`힘과 정, 그리고 열기가 종이를 뚫었다'고 이 `수상록'을 극찬했다.

   그는 1983년부터 전국정치협상(政協)회의 부주석, 전국작가협회 주석을 역임해왔다.


    京王 플라자호텔 複道의 커피브레이크에서 偶然히ㅡ.


   東京 PEN 회의와 巴金ㅡ. 1984년 東京 세계작가대회에 왔을 때, 그의 건강은 이미 무너져 심히 초췌했다. 보폭에서 또는 표현 능력에서 워낙 부자유스러웠다. 우뢰 같은 박수를 받으며 겨우 연단에 오른 巴金ㅡ.

    너무나 짧은 키에 왜소한 그의 안색은 피로에 지쳐 숫제 호흡이 가파로왔다. 그는 측근에 의해 부축 받은 채 고맙다는 한 마디를 남가고 그냥 위태롭게 내려가며 박수 갈채의 황홀한 열광에 묻혔다.

    京王 플라자호텔 복도의 커피브레이크에서 우연히 그가 자나갈 때는 모두 기립해 박수를 보내는 파격적인 경의를 표해, 거물다운 풍모를 은은히 확인하게 했다.

   그 무렵만 해도 서방측 PEN 행사는 문혁 운동에 동원된 모택동 복장의 중공(中共)인들에 대해 관심이 희박한 시대였다.


    ■"오래 사는 건 刑罰이야. 제발 편히 죽게 해줘, 오래 살아 뭐해ㅡ?"


   홍공 文匯報 21일자 보도의 巴金ㅡ. 의사나 기자들에게 안락사(安樂死)를 요청해 충격을 던진다. 인후관 절개 수술 후 그 후유증 때문에 지금 4년 가깝게 華東병원에 유폐(?)돼 있다.

    병세는 악화돼 외부와 격리된 상태다. 실상 인후과 절개 이전에 파킨스 병에 만성 기관지염, 고혈압 등이 겹쳐 쉼 없이 고통을 받아왔다.

   사실상 식물인간으로 코를 뚫어 음식과 약물을 주입하고 있어 입원한지 1년도 안 돼 가족들에게 이런 당부를 했다. ㅡ"오래 사는 건 형벌이야. 제발 편히 죽게 해줘, 오래 살아 뭐해ㅡ?"

   이에 미디어 의 설문에 北京시민 64%가 안락사를, 그리고 전인대(全人大. 國會)가 이 법의 입법화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그의 가족이나 중국문단, 그리고 정부가 안락사를 강력히 거부하고 있다.


    巴金은 한 世紀의 아시아 大陸에 불 밝혀온 偉大한 스승ㅡ.

 

   인간 국보 巴金ㅡ. 이에 그에게는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다. 국보를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1984년 東京 PEN회의 참가 때부터 공식 활동이 무한히 부담스러웠다.

    그로부터 줄잡아 어언 10년, 1991-2년에 그는 계속 안락사를 요구하고 죽기를 소망했다. 젊었을 때, 그는 버릇처럼 ㅡ"나는 40까지만 살고 가겠다"고 다짐했지만 이제 그는 백세청풍(百世淸風)을 맞는다.

   ㅡ`인간의 연령에는 하나의 철학이 대응한다. 노인은 신비주의자임을 고백할 것이다. 그는 많은 일들이 우연과 연결되는 것을 알고 있다'(J. W. 괴테/箴言과 省察) 그렇게  巴金은 한 세기의 아시아 대륙에 불 밝혀온 위대한 스승이다.

    온 세계가 보내는 영광의 관(冠)에 신의 영원한 가호가 있으라! 나의 칼럼 2003.11.22 作家 巴金과 東京의 追憶」을 daum.column.co 「바람 따라 구름 따라」(2002.7.1 제719호. ■薔微 100송이의 榮光 ‘作家巴金’ 2003.11.22)칼럼집에서 참고할 수 있다.



by 朴馨 丘 | 2009/11/25 23:07 | 文化論 | 트랙백 | 덧글(0)

■文化ㅡ, 그 倫理性

 

                                                        文化ㅡ, 그 倫理性

                                         힘 있고, 빛있는 아름다운 自身을


    靑磁의 리사이클 作用은 塗布物로 潤澤해져ㅡ.

 

   추수동장ㅡ. 겨울에는 힘을 저장한다. 황소의 힘, 그것은 소크라테스의 힘에 비해 하찮을 뿐이다. 지적 건강, 곧 건전한 정신의 연마를 필요로 하는 때문이다. 아는 것이 힘, 지식과 힘은 동의어라고 했다.

   이는 한 시대의 풍조와 사상적 영향에 크게 작용한다. 따라서 이에 적합한 교양(culture)이 필수다. 세련미다. 이 culture는 그래서 문화와 이어진다. 우리의 청자(靑磁)는 조상의 얼이 담긴 문화의 정화다.

   듯 인간의 세련미는 선택한 독서에 의해 빛의 우열을 좌우하게 된다. 현대의 매체 문화는 힘과 색에 머문다. 곧 폭력과 성(性)이다.

   그만큼 젊은이는 이 두 주류를 인생의 가장 중요한 생명의 의식으로 받든다. 그들이야말로 이 두 매력이 상실될 때 인생의 행복이 폐쇄된다고 믿는다. 먹고 배설하는 생리적 쾌감ㅡ. 이것이 그들의 전부다.

   이는 교양을 심화하는 고답적인 청자 취향의 계열에게 심히 불쾌감을 던지기에 오늘의 활자ㆍ영상 매체에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폭력과 성을 혐오한다. 저질 유럽문화의 모방에 크게 식상해 있다.

    그러나 오늘의 척도는 정당한 가치평가일 수 없지만 저널리즘을 통해 국민 문화수준이 측정되고 있다.


   미디어의 體質은 廣告 成分에서 畵面 浪費ㅡ.


   문제가 되는 미디어의 체질은 광고 성분에서조차 性과 美에 지면과, 화면을 낭비한다. 어브시티와 에로티시즘이 다르지만 수용자는 한 때의 호기심 뿐 비판의 안식이 마비돼 있다. 특히 주간지의 에로틱한 성범죄 내막 폭로는 어느 한 곳 등 돌리지 않고 매너리즘으로 일관해 있다. 호기심 촉발을 위한 성 스캔들을 바닥에 깔고 헤집는데 치우쳐 저널리즘으로서의 문제 제기에 대한 사명을 전혀 고려치 않는다. 독자란 그것에 약하기 때문이다. 이 풍조는 우리 교육의 과오에서 방만성을 보인다. 기억형(O, X)교육의 도입으로 전혀 논리적 체계가 없어 발표능력의 위축이 손 가까운 성문화로 낙착하게 했다. 우리 문화는 이렇게 비참하도록 소비화 되고 있다.+8


   제2, 제3의 라스콜리니코프가 戰慄한다ㅡ.


   이런 세태는 오귀스트 로댕의「생각하는 사람」을 경박하게 취급한다. M. A.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죄와 벌」에서 그 한 예를 옮겨본다.


 "요샌 왜 아무 일도 안 하죠?"

하고 나스타샤가 묻는다.

 "하고 있어"

하고 라스콜리니코프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얼 …하죠ㅡ?"

 "일하는 거지…"

 "무슨 일?"

 "생각하는 일!"

그 말에 나스타샤는 배꼽을 쥐고 떼굴떼굴 구르며 웃었다.


    생각하는 일ㅡ! 그게 뭔데? 그 일 이후 젊은이는 확실히 생각하는 일이 늘었다. 획책한 끔찍한 행위 그 전후를 생각해야 했다. 평소 자기실현에 대한 만족을 느끼면서 거기 불안이나 공포란 수반되지 않았다.

   그러나 엉뚱한 행동이 있은 뒤, 그의 생활은 한 마디로 지옥이었다. 자기 비력(非力)의 반사적 행동을 통제할 힘을 잃은 라스콜리니코프…. 우리 주위에는 지금 제2, 제3의 라스콜리니코프가 도서관 책상 앞에 엎드려 있거나, 찬바람이 스며드는 지하철 입구에서 고민과 불안에 전율하고 있다.


   敎養을 위한 讀書, 마음의 知力 增進ㅡ.


   라스콜리니코프는 혼자가 아니다. 거기에는 많은 라스콜리니코프가 있다. 우리 안에도 라스콜리니코프가 있다. 우리 사회는 이렇듯 그림자로 어둡다.

   나스타샤를 뒹굴게 만든 「생각하는 일」ㅡ. 사고와 행동, 정과 동…. 사상의 세계, 그것은 무한한 활약의 세계요, 보고 듣는 유한의 활동 세계는 곧 내적 세계의 표현이다.

   이 같은 자유로운 내적 힘을 갖지 못하는 일체의 외부 세계 표현은 다만 한 때의 통쾌한 동작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자기 생명을 본격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소니아가 없었다면 그의 진실한 생명력은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깊이 사색함으로써 깊게 살아가려는 길을 알고 진정 힘 있고, 빛  있는 아름다운 자기 자신이 그 길을 발굴하게 한 것이다. 사상이란, 결국 본원적인 실행을 서두르게 한다. 가장 심각한 실행이다.

   인간의 힘ㅡ! 그 다이내미즘과 깊이와, 자유를  표방해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으리. 꿈꾸는 대지 위에 나팔을 불(P. B. 셸리/西風賦) 그 힘을 저장하지 않으려는가!

   사상의 힘이란 곧 생명의  힘이기 때문이다. 이 힘은 교양을 위한 독서라는 거름으로 마음의 지력을 증진하게 된다. 영화(榮華)에 급급하지 않고 인격을 연마하는 데서 영혼처럼 사상의 힘을 고귀하게 만든다.


   데마고그의 입, ‘가장 두려워해야 할 刑罰’ㅡ.


   일본의 철학자 니시다 이쿠타로(西田畿太郞)의 역작 「선(善)의 연구」재판이 출간된다는 광고에 판매 서적상 앞에는 미리부터 서적을 구입하려는 시민으로 장사진을 이루어 철야했다는 보도는 아직 충격적이다.

    독서 무용론이 일고 있는 우리에게 저들이 보여주는 `아는 것이 힘'이란 이 힘의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억압'과 무관하다.전직 대통령에 대해 상찬하거나 비판하는 태도는 곧 말하는 측의 자유일 것이다.

   자유로운 의견은 환영돼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지적하는 재료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실이 없어서는 안 된다. 다만 신문에서 어떤 문인의 글을 읽고 그것이 맹랑한 허구라고 알아도 주저 없이 백주 대로를 횡행한다.

   문제가 이쯤 빗나가면 히틀러의 나치즘 류 선전을 연상하게 만든다. 이 같은 경향은 평화를 사랑하는 데에 진심으로 곤혹스러워진다. 盧·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추종 국민조차 일부에서는 지금도 ‘좌경분자 운운’하고 있어 아찔해진다.

  영국 노동당의 1951년 이래의 잃어버린 생기 되찾기 일환으로 사회주의 답습한 경향을 보면 일관성 있고 불변한 교리 체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시대에 따라 교리 자체가 바뀌고 그 견해 또한 모순을 드러냈다.

     ‘햇볕정책’은 그 같은 일련의 견해와 다르다. 데마고그들이 퍼뜨리는 언어문화의 무분별이란 식견 있는 지성인을 분노하게 하는 충동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비판은 <가장 두려워해야 할 형벌>이다. 


    



        

        

        

        

            

 

by 朴馨 丘 | 2009/11/25 18:15 | 文化論 | 트랙백 | 덧글(0)

‘09 送年 日曜時評 ①

 

                                                    ‘09 送年 日曜時評 ①

                                     認識의 能力ㅡ複眼 思考

                       汚染된 精神力의 源泉 淨化를


     ① 認識의 能力ㅡ複眼 思考

      ② 關心과 參與ㅡ告發과 克復

      ③ 밝은 社會造成ㅡ意識 改革

      ④ 創造의 힘ㅡ讓步와 調和

      ⑤ 先進의 디딤돌ㅡ幸福의 條件

      ⑥ epilogue

 

○…09  乙丑년의 활기찬 시동이 점화되던 날ㅡ, 우리의 현실감각, 미래예측은…○

 ○…묵묵히 일하는 황소 같은 행운에 꿈을 싣고 각 분야에서 그 성취의지를 과감…○

 ○…히 표방했다. 그리고 또 송년의 시점에서 神조차 몰랐던 정책의 저해 요인으 …○ 

 ○…로 창과 방패가 한 곳에 존재하지 않는 모순, 폐해의 비관을 함께 하는 환멸…○

 ○…이 컸다. 게재는 22일부터 12월27일까지 6회로 엮는다.[編輯子 注]      …○

               

         

    ‘豫算國會’ 跛行,왜 이러나 ?

   

   낙엽이 지면서 이별이 울고. 그 울음 위에 한 해의 그늘이 엄습한다. 한 주일이 지나면 十二月의 시작이다. 세모는 춥지만 冬至와 크리스마스가 봄의 향기를 불러일으키는 계절의 기점(起點)에 접근해 있음을 알자….

   정부가 제출한 새해 예산안을 다룰 `예산국회'가 4대강 예산내역을 두고장기화 될 움직임이지만 절망하지 않는다.

     법정시한인 다음달 2일까지 예산안 처리가 불투명해지고,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 9일까지도 기대난이라지만ㅡ. 현재 국토해양위 등 5곳은 아직 예산심의 심의 일정조차 설정하지 못한 상태다.

   특히 2010년 장애인복지 예산은 당사자들의 수요를 이르지 못해 장애계의 불만과 반발이 크다. 야당도 상임위나 본회의에서 국회 정상화에 나서야 되겠다.

   4대강 사업 예산 등의 문제로 국회 정상화가 불가능해져 2010년 예산안이 정부원안으로 넘어가고 장애인복지 예산 증액을 못하거나 상임위나 본회의 파행이 되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아울러 이 기회에 미디어법 재논의에 착수하면 어떤가? 정부 여당은 수치감을 왜 모르는가?

    날치기 처리된 미디어법을 유효하다는 헌재 결정이 얼마나 치졸한가를 국민은 비웃고 있다. 미디어 법의 재논의가 외면될 때 과연 항국의 저널리스트에게 더 무엇이 가능하겠는가…?


   ■憲栽의 明快한 說明에 拍手를ㅡ.

   

   최근 대법원이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이 같은 신뢰가 쉽게 허물어지고 만다. 예산안 중 일부가 법규에 어긋나거나 당초 약속과는 다르게 편성됐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규정을 쉽게 어기면서 어떻게 하급법원에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중 사법연수원생 급여는 국민들의 미묘한 법감정과 관련성이 크다.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 이후 소수만 공무원이 되는 마당에 로펌으로 가는 연수원생에게까지 매달 150만원 안팎의 보수를 지급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의아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도 전체 수료자 980명 가운데 180명만 판검사로 임용됐을 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법원은 내년 사법연수원생 봉급을 실제 지급해야 할 액수에서 15억4274억원이나 초과 편성했다.

    연수원생 교육기간이 23개월이지만 예산안은 임의로 24개월 기준으로 산정했으며 2년차 연수원생에게 지급하는 정근 수당도 기준의 배로 책정했다고 한다.

 여기서 하나 주목되는 헌재의 미디어법 판결 이후 “강간은 했지만 형사처벌은 곤란하다”는 하철용 사무처장의 설면을 존중한다.

 일부신문은 “무효로 할 만한 하자가 아니다”고 했지만 이 또한 매우 곤혹스러운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헌재가 우리 국회에 결정적인 입법부의 권위의식과 자율성을 인정해 보호한 점 박수를 보낸다.


    ■政府의 行政인턴制度에 不滿ㅡ.


    정부의 사고와 실천이 문제다. 지식인과 충심측이 겉돌고 있다. 이는 정부의 단안사고(單眼思考) 탓이다. 현하 세종시 문제나 4대강 하천 개발 상황을 두고 왜 복안(複眼) 사고를 갖지 못하느냐다 .각각 수정안이 나와야 된다. 

  졸속 부실을 드러낸 지방 통합 문제를 두고 해당 지역의 반발이 높다. 행안부의 발 바른 통합추진 원칙이 요청된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3개국 대학생들이 정부행정력을 중국(474명, 33.7%) 일본(357명, 25.4%) 한국(210명, 14.9%) 순으로 꼽고 있다.

  이 평가에서 중국(250명, 50.0%)과 일본(118명, 25.8%) 대학생들이 중국 정부의 행정력을 지적하며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와 달리, 한국 대학생(180명, 40.0%)은 일본을 지적했다. 우리의 행정력은 언급이 없다.

  또 중앙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 등에서 근무하는 신규 대졸자와 청년실업자를 위한 제도인 행정인턴제는 그 기간이 10개월로 월 90만~100만원 보수에 머문다. 그 때문일까? 대학생이 지망하는 정부의 행정인턴제도에 불만이 크다,

   과거 대학 재학생을 대상으로 방학에 운영했던 ‘인턴십’과 달리 대졸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해 급여 수준이 매우 낮다. 저임금과 단순 업무, 경력의 인정 등, 행정 인턴제가 취업준비생의 취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또한 쌀농사를 본업으로 하는 농가에 경제가 돈다고 했지만 쌀값의 포락으로 수확을 앞둔 벼논을 불사르거나 아우성이 컸다. 정부의 실책이다.


  ■그 權威主義, 올 한 해 무얼 했나ㅡ?


  인터넷 네티즌의 글은 심각하다. 예를 들면 정부는 무얼 하고 있으며 국회는 또 무엇 때문에 존재하고 있느냐는 등, 불만을 토로하고, 월급 값 좀 하며 살라고 외친다. 오염된 정신력의 원천을 정화했으면 하는 주문이다.

   이 어려운 경제실정에 에 소비자보호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경제를 악용해 국민에게 굴욕적인 피해를 주고 있지 않은지, 국민이 어떤 문제로 고민할까? 내가 정치력이 미흡해 국민이 고생하며 어려움을 겪지 않는지…?

   이런 자기비판은 없고, 국회에서 싸움질만 해 무슨 양심으로 월급이며 활동비를 받아내는가, 힐난하고, 아프게 경고한다.

  또 “당신네가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됐으면, 한 가정의 가장이라고 생각해 좀 더 훌륭한 가장이 되기 위해서라도  정치를 잘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일갈하고 있음을 주목하게 한다.

  국회의원이나 공무원은 국가민족의 복리 증진을 위해 선택된 계급이다. 공사 간에 격려와 편달을 함께 해왔지만 일부의 불충으로 전체적인 저속평가에 치우치기도 했다. 이 한해를 보내며 스스로 냉혹한 자세를 통해 솔직하게 성찰하고 일신된 신념으로 대비해 나가야 한다.

  한나라당 의원은 과연 책임 있는 정당으로 야당에 설득력 있는 컨트롤의 역량을 발휘 왔던가? 또 야권은 정치권의 긴장완화를 위해 그 필요성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추구해 왔던가? 그 권위주의, 올 한 해 무얼 해 왔나?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公務員勞組, 그  卑下 記事를 읽고ㅡ.


   전국의 각 노동단체와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등, 시민·종교·사회·정치단체의 기자회견 내용을 보면,

   "mb정권 출범 이후 노동자의 노동3권은 갈수록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며, 특히 통합공무원노조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도를 넘어, 노사정 6자회의를 파괴할 만큼 그 정도가 심각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보면 공무원노조가 공무원사회 내에서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가졌는지를 대체로 파악할만하다. 지금은 정의를 요구하는 시대다.

   일부언론은 공무원노조를 비난했다. “통합노조 측은 앞으로 불법 파업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정치세력화를 명문화한 민주노총과 보조를 맞추기로 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통합노조가 파업 등 불법행위를 강행할 경우 대규모 행정 공백이 발생할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또한 공무원 노조의 가입으로 민주노총이 한국노총 조합수와 비슷해 질 것이나 정부가 “민주노총 소속 통합 공무원 노조가 대화상대로 적절한지 심각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혀 <노동정책에 영향력을 더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내다보았다….

   문화와 인간의 가치를 분석할 때 인간의 가치척도가 물질적 사조나 구성아래서 문화의 흐름을 지나친 퇴폐에 치닫게 했음은 유감이다. 금력이나 권력 아닌 참 문화를 통해 사회에 기여한 사람들이 우대됐으면 싶다.

  



 

  


 






 

 


   

by 朴馨 丘 | 2009/11/22 21:03 | 文化論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