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뭉크의 ‘絶叫’를 다시 생각한다.
北歐의 긴 겨울 克服에 이 作品이 慰勞를!
■가슴 울린 絶叫, 뭉크 博物館ㅡ.
북 유럽 여행을 즐기는 풍류인사는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Edvard Munch)의
작품 ‘절규(The Scream)’를 보지 않고 돌아온 여행자란 없을 줄 안다.
노르웨이의 천재 화가 이름은 몰라도 ‘절규’는 중학생도 안다. 1994ㅡ, 2004년에 두 번이나 도난당했을 정도로 ‘절규’는 오슬로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의 사후 뭉크박물관(Munch Museum)은 뭉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1963년 개관됐다. 모든 작품이 시에 기증됐는데 어떤 관광객은 오슬로에 여행하는 목적 자체가 바로 이 미술관을 보기 위해서라고 밝힌.
뭉크박물관은 월요일이 휴관이지만 가까운 오슬로 국립미술관(Oslo National Gallery)에서도 뭉크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뭉크는 자신의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같은 작품을 여러 번 그리기도 했고 절규도 유화나 템페라화, 판화 등으로 제작됐었다. +5
■파스텔畵 ‘絶叫’ 1354억 원 落札ㅡ.
이번에 경매에 내놓은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절규' (The Scream)는 뭉크가 '절규'란 이름으로 그린 회화 4점 중 하나로 유일하게 개인이 소장품이다.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화제였다.
1895년 작품으로 2일구매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나머지 3점은 노르웨이박물관이 관리하고 있다. 경매된 '절규'는 4점 중 가장 화려하고 역동적이며 이 작품의 프레임에 화가가 작품의 영감을 설명한 시를 직접 쓴 유일한 작품이라고 소더비가 밝혔다.
뭉크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페테르 올센의 아버지가 노르웨이 사업가 피터 올센은 세상의 다른 사람들에게 이 명작을 소유하고 진가를 알아볼 기회를 줄 때가 됐다고 생각해서 소더비를 통해 이를 팔게 됐다고 밝혔다.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인 1억1992만 2500 달러(약 1354억 원)에 낙찰됐다. 지금까지 경매 최고가 기록은 피카소 작품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Nude, Green Leaves, and Bust)'이 2010년 세운 1억 650만 달러였다.
낙찰가에는 구매자의 보험료와 소더비 몫의 수수료 1290만 달러(약 145억 원) 등이 포함됐다. 이작품은 뭉크가 1895년 파스텔로 그렸다. 판매 수익금은 올센의 아버지와 뭉크가 살았던 노르웨이 흐비스텐에 박물관, 미술관, 호텔 등을 설립하는데 사용될 예정이다.
■苦痛에 찬 幼少年期 靑年期ㅡ.
뭉크의 집안은 대대로 목사ㆍ군인ㆍ관료ㆍ학자들을 배출한 노르웨이의 가장 뛰어난 교양 있는 가문이었다. 그는 태아 때부터 유아기, 학령전기와 아동기를 거치며 유전적인 요인과 사회 환경적인 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유년기부터 우울하고 불행했다. 그리고 아버지 크리스티앙은 몽상적 기질이 강했으며 아내가 죽은 후 신경질 적이고 우울하며 광신적으로 종교에 집작하는 이상 성격자였다.
할머니 라우라 카트리네 비율스타드는 집안 대대로 정신적・육체적 유전병이 있었다. 뭉크가 5세 때 어머니가 숨졌고, 14때는 누나까지 잃었다. 장성한 후 여러 여성들과 교제할 수 있었다 어렸을 적의 이런 영향이 뭉크의 삶과 작품 세계를 거의 확립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이성교제는 어머니나 누나 같은 따뜻한 여성은 발견하지 못했으며 흡혈귀나 마녀 같은 여자를 만나야 했으며 이렇게 젊어서 삶이 불안할 때 26세에 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난다.
그의 이 같은 삶은 어느 자서전이나 주변의 증언보다 뭉크의 작품을 통하여 잘 나타나 있고 그는 자신의 어릴 적 외상을 작품에서 도발적이고 노골적으로 숨김없이 드러내 보인다.
■즐겨 읽는 詩에서의 感興을ㅡ!
그는 시인 오브스트 휄다의 시를 즐겨했고 또 그는 이 시에서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 깔려 있는 심층 심리를 캐낼 수 있었다.
나는 홀로 거리를 배회했다
어린 아이들 노래를 들었다
나는 계단에 앉아 사별한 어머니를 염념했다
밖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의 그림자가
말라빠진 해골의 팔에 안겨 있는
나무 그림자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이렇게 음울한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직관하면서 정면으로 대결하는 자세로 극복했던 그의 의지를 그림으로 느낄 만큼 우리는 그 자신이 살다간 삶의 고통과 정신 병리와의 밀접한 관계를 알 수 있게 한다.
그의 삶은 이면서 보다 보편적인 공감과 스스로의 위안을 얻으려 한 점에서 순수회화라기 보다, 일종의 예술세계에 몰두함으로서 자신의 정신분열증을 치료하기 위한 한 방편이 되기도 했다.
이 같은 그의 독특한 표현기법은 회화뿐 아니라 조각ㆍ문학ㆍ연극ㆍ영화 등을 포함한 독일 표현주의 예술에 크나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작품 ‘절규’는 심리적인 공포와 두려움, 우울과 불안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강렬하게 뒤흔드는 마력이 혼재되어 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인간 내면의 고통과 심리적 갈등을 강렬한 색체와 구도로 적나라하게 투사해 보는 사람들에게 기묘한 흥분과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대 苦痛스러우면 絶叫하라ㅡ!
뭉크는 생전에 이 작품 앞에서 “ 나는 자연을 통해 무서운 절규를 느꼈다”
("Ich fühlt das groβe Geschrei durchi die Nature.")고 고백했다. 따라서 그의 절규는 결코 개인의 불만, 고독, 자기 죄에 대한 절규만이 아니었다.
사회악을 고발하며 정의 길을 추구하는 절규인 만큼 심리적 종교적 복합적인 성격을 함유하고 있었다. 미술이란ㅡ 정면에서 그것을 응시하는 실존과 혼연일체가 될 때 미적으로 승화될 수 있다.
뭉크는 애송시 ‘말라빠진 해골의 팔에 안겨 있는 나무 그림자를 향해’ 접근하면서 무섭게 절규를 토한다.
‘주님, 깊은 곳에서 당신께 부르짖습니다.’(시편 130,1)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하며 예수님의 최후 십자가상의 절규도 곧 그 같은 고독한 한의 상황에서 외치게 마련이다. 여기서 뭉크의 세기적 걸작품 ‘절규’가 그려지지 않았을까?
뭉크 박물관에서 본 작품 ‘절규’는ㅡ 북구 혼이 살아서 빛나고 또 그들은 기나 긴 혹한의 겨울을 이 ‘절규’의 저력에 의해 고통을 이겨내는 힘을 위로 받고 있었다. 이 그림이 오슬로에 없을 때의 겨울을 생각하게 한다.
그대여 고통스러운가? 그러면 힘껏 소리쳐 외쳐라, 절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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