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7일
■待臨 第1主日 「주님의 날」

■待臨 第1主日 「주님의 날」
다시 오실 그날까지 즐겁고 기쁘게
■대림절 새해 첫날 다해가 시작됐습니다ㅡ.
11월29일 대림 제1주일입니다ㅡ. 가톨릭 전례력 새해 첫날, 다해가 시작된 날입니다. 4주간으로 이루어지는 대림절 예수의 성탄을 맞기 위해 희망으로 기다리는 기쁨의 시기입니다. 독서와 복음의 주제는 ‘그날’입니다.
대림절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에 대한 묵상 시간입니다. 주님께서 오시겠다고 정해주신 그 방향을 응시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이 오실 그 날은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아버지만이 아십니다.
우리는 하느님 때문에 변화된 삶을 기대하며 대림 시기를 뜻 있게 꾸미도록 해야 됩니다. 우리 신앙의 기쁜 소식은 `하느님의 아들(聖子)'예수 그리스도께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님이시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것입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은 당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써 그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시는 이 큰 사건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오랜 세월 동안 그에 대한 준비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과 맺으신 옛 계약의 예식과 희생제사, 표상과 상징들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집중돼 있으며 모세와 그 후계자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예고하셨습니다.
■「예수」: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는 의미ㅡ.
하느님의 인간 구원 계획ㅡ. 당신과 본질이 같은 성자(聖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써 결정적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이름은 예수님의 신원(身元)과 사명을 동시에 나타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나자렛에 사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 1,30-33)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심은 하느님께서 일찍이 예언자 나단을 통해 인류에게 주신 약속의 실현입니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2사무 7,14)
그러나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 자신도 처음에는 그분이 누구인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분의 신원을 분명히 밝혀주는 것은 그 분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영원한 말씀ㅡ
예수님을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신약성서ㅡ. 요한복음 첫 장은 예수님이 `한 처음에' 계셨고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신데 이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이 생겨났고 또'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곧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영원한 말씀이고 그 말씀은 하느님이며 동시에 하느님을 우리에게 알려준 분이십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주셨다'(요한 1,18)
토마스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28)라고 했고 신약성서 전체를 통틀어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품위와 신분과 힘을 갖고 행동하시는 분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모든이의 아버지’, 하느님에 대한 계시의 핵심ㅡ.
예수님이 계시하신 아버지 하느님ㅡ.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을 받으시다가 당신의 지상 생애의 최후에 이르러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당신의 지상 생애를 오로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데 바쳤다는, 그리고 그것을 완전히 이루었다는 최후의 진술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예수님 자신의 아버지일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시라는 것이 예수님의 하느님에 대한 계시의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아빠(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아빠'는 어린 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부르는 매우 친근한 말입니다. 이 같은 호칭은 당시 유다 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지극히 높으신 분, 하늘에 계시는 분으로 밖에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한계를 모르는 자비로 모든 이를 특히 미소하고 보잘것없는 자들을 사랑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느님은 죄인에게 회개를 먼저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당신이 죄인에게 다가감으로써 그를 회개하도록 아무런 조건도 없이 자비를 베푸십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친아들'이심을 입증ㅡ.
하느님의 자비하심ㅡ. 곧 그 분의 선하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 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마태 19,16) 라고 예수님은 가르치셨습니다. 하느님의 선하심은 특히 죄인들 위한 자비에서 두드러집니다.
예수님은 `잃었던 아들'에 관한 비유 이야기(루카 15,11-32)를 통해 못난 자식이라도 애지중지 아끼는 하느님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작은 아들의 방탕이나 큰아들의 불만에 찬 반항, 그리고 세상의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예수님의 절대적 신뢰와 순종은 예수님이 아버지의 `친아들'이심을 입증합니다. 하느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시는 덕분에 우리도 하느님을 감히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나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1요한 4,10)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셨습니다.'(2코린 5,19)
■예수님은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목숨을 바치셨습니다ㅡ.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당신 몸을 바친 예수님ㅡ. 최후의 만찬 중에 이 같은 선물을 미리 보여 주시고 실현하십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루카 22,19)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 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요한 15,13)고 가르치셨으며 당신 자신이 이 큰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사랑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것입니다. 자신을 내어주기 위해서는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사랑을 위해 고통을 기꺼이 수락하신 하느님만이 고통 중에 모든 인간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명에 충실하셨으며 더욱이 임박한 죽음을 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수락하셨다는 점에서 그 죽음은 자발적이고 따라서 희생적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통해 구원받을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복음서들은 예수님께서 당신이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리라는 것을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예고하셨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어주시기 위해 당신이 수난을 당해야 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4-15)
■인간들에 대한 사랑의 희생으로 계명을 완성ㅡ.
하느님과 인간에게 봉사하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ㅡ. 그 분이 가르쳐주신 사랑의 이중계명(마르 12,19-31)과 일치됩니다. 예수께서는 당신 아버지를 위한 사랑의 순종으로 또 아버지께서 구원하시기를 바라시는 인간들에 대한 사랑의 희생으로 이 계명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수난과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 아버지를 충실히 공경하는 데 필요한 순종, 겸손, 항구함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우리가 불리하게 대우받을지라도 정의와 자비의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잘 드러낸 완전한 구원행위였습니다(요한 3,16). 죄로 인해 하느님으로부터 소외됐던 인간은 하느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 실제로 본 다음에야 하느님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 5,8)
■사랑은 죄보다 강하다는 것을 십자가는 말합니다ㅡ.
골고타에 세워진 십자가ㅡ. 예수님은 십자가상의 죽음을 통해 하느님의 충만한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죽음 보다 강하고(아가 8,6) 사랑은 죄보다 강하다는 것을 십자가는 얘기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은 정의와 사랑으로 충만한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십자가 위의 죽음, 이 끔찍한 형벌 방법은 페르시아 인들에 의해 창안됐습니다. 기원 전 519년에 바빌론에서 300명의 반란자들이 십자가에 달려 처형됐다고 합니다.
이 십자가형을 로마인들이 물려받았습니다. 유다 인들이 볼 때 이는 하느님의 단죄의 가시적인 징표요, 부끄러움과 치욕에 있어서 이 보다 더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없는 궁극적인 것(히브 12,2)을 의미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마르 15,34)하고 외치셨습니다. 이는 시편 22편 첫머리에 나오는 말씀이며 이 기도는 고통을 호소하는 것으로 시작해 그 고통을 들어주시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영광을 노래하는 것으로 마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결코 잊지 않으셨으며, 이 마지막 외침이야말로 패배의 외침이 아닌, 희망의 외침, 승리의 외침이셨습니다.
■십자가는 자비로우신 하느님 사랑의 절정ㅡ
십자가의 사건은 분명 우리의 구원을 위한 사건입니다ㅡ. 곧 우리를 위한 사랑을 위해 이루어진 가난의 신비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사랑 없이 십자가는 이해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갈라 6,14)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자비로우신 하느님 사랑의 절정ㅡ. 당신 외아들을 내어주신 아버지의 사랑과 당신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교차돼 드러난 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과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교차돼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승화된 곳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온전히 하느님의 충만하신 사랑으로 인도되고, 따라서 그리스도 교 신앙이 싹틉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미리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에 모 박혀 죽으시고 묻히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구약 전반에 걸쳐 언급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과 구원 약속이 성취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더 이상 죽음 없는 삶에로의 옮겨감입니다ㅡ.
예수님의 부활은ㅡ. 하느님이 당신 아드님을 통해 인간의 고통을 함께 짊어져 주고 인간의 죄가 불러온 궁극의 비참함인 죽음을 극복해 축복으로 변하게 해주는 아버지로서의 당신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더 이상 죽음이 없는 삶에로의 옮겨감입니다. 부활하신 당신의 육신으로 예수님은 죽음의 상태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다른 생명의 세계로 넘어가십니다.
예수님의 몸은 부활을 통해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져 영광스러운 상태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삶의 충만이고 역사와 세상 안에서의 적극적이며 능동적 현존이며 새로운 몸으로 영위하는 새로운 삶입니다.
부활은 십자가 죽음을 완성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죄와 죽음에 대한 최종 승리, 인간을 위한 해방을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죽을 인간의 삶이 죽음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문을 지나 새로운 생명을 누리게 됐습니다.
■‘부활’은 믿음의 바탕이며 신앙생활의 중심이 됩니다ㅡ.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ㅡ.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다시는 죽음이 없는 새 생명에 대한 희망을 안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부활 사건은 우리 믿음의 바탕이며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교우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시어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의 힘으로 여러 사명을 주신 다음 40일이 되는 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올리시어 당신 오른 쪽에 앉히셨습니다.”(에페 1,20)는 것은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셨다는 것과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서 `아버지의 완전한 영광'안으로 들어갔다는 것,
그리고 세상 만물을 다스리며 인간을 구원하는 모든 주권이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그분께도 주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합시다.♠
# by | 2009/11/27 09:29 | 信仰의 神秘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