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로그


뭉크의 '절규' 文化論

 

                             ■E, 뭉크의 ‘絶叫’를 다시 생각한다.

              北歐의 긴 겨울 克服에 이 作品이 慰勞를!


가슴 울린 絶叫, 뭉크 博物館ㅡ.

북 유럽 여행을 즐기는 풍류인사는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Edvard Munch)의

작품 ‘절규(The Scream)’를 보지 않고 돌아온 여행자란 없을 줄 안다.

   노르웨이의 천재 화가 이름은 몰라도 ‘절규’는 중학생도 안다. 1994ㅡ, 2004년에 두 번이나 도난당했을 정도로 ‘절규’는 오슬로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의 사후 뭉크박물관(Munch Museum)은 뭉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1963년 개관됐다. 모든 작품이 시에 기증됐는데 어떤 관광객은 오슬로에 여행하는 목적 자체가 바로 이 미술관을 보기 위해서라고 밝힌.

   뭉크박물관은 월요일이 휴관이지만 가까운 오슬로 국립미술관(Oslo National Gallery)에서도 뭉크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뭉크는 자신의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같은 작품을 여러 번 그리기도 했고 절규도 유화나 템페라화, 판화 등으로 제작됐었다. +5 

   

파스텔畵 ‘絶叫’ 1354억 원 落札ㅡ.

이번에 경매에 내놓은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절규' (The Scream)는 뭉크가 '절규'란 이름으로 그린 회화 4점 중 하나로 유일하게 개인이 소장품이다.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화제였다.

   1895년 작품으로 2일구매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나머지 3점은 노르웨이박물관이 관리하고 있다. 경매된 '절규'는 4점 중 가장 화려하고 역동적이며 이 작품의 프레임에 화가가 작품의 영감을 설명한 시를 직접 쓴 유일한 작품이라고 소더비가 밝혔다.
   뭉크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페테르 올센의 아버지가 노르웨이 사업가 피터 올센은 세상의 다른 사람들에게 이 명작을 소유하고 진가를 알아볼 기회를 줄 때가 됐다고 생각해서 소더비를 통해 이를 팔게 됐다고 밝혔다.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인 1억1992만 2500 달러(약 1354억 원)에 낙찰됐다. 지금까지 경매 최고가 기록은 피카소 작품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Nude, Green Leaves, and Bust)'이 2010년 세운 1억 650만 달러였다.

   낙찰가에는 구매자의 보험료와 소더비 몫의 수수료 1290만 달러(약 145억 원) 등이 포함됐다. 이작품은 뭉크가 1895년 파스텔로 그렸다. 판매 수익금은 올센의 아버지와 뭉크가 살았던 노르웨이 흐비스텐에 박물관, 미술관, 호텔 등을 설립하는데 사용될 예정이다.


苦痛에 찬 幼少年期 靑年期ㅡ.


뭉크의 집안은 대대로 목사ㆍ군인ㆍ관료ㆍ학자들을 배출한 노르웨이의 가장 뛰어난 교양 있는 가문이었다. 그는 태아 때부터 유아기, 학령전기와 아동기를 거치며 유전적인 요인과 사회 환경적인 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유년기부터 우울하고 불행했다. 그리고 아버지 크리스티앙은 몽상적 기질이 강했으며 아내가 죽은 후 신경질 적이고 우울하며 광신적으로 종교에 집작하는 이상 성격자였다.

   할머니 라우라 카트리네 비율스타드는 집안 대대로 정신적・육체적 유전병이 있었다. 뭉크가 5세 때 어머니가 숨졌고, 14때는 누나까지 잃었다. 장성한 후 여러 여성들과 교제할 수 있었다 어렸을 적의 이런 영향이 뭉크의 삶과 작품 세계를 거의 확립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의 이성교제는 어머니나 누나 같은 따뜻한 여성은 발견하지 못했으며 흡혈귀나 마녀 같은 여자를 만나야 했으며 이렇게 젊어서 삶이 불안할 때 26세에 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난다.

   그의 이 같은 삶은 어느 자서전이나 주변의 증언보다 뭉크의 작품을 통하여 잘 나타나 있고 그는 자신의 어릴 적 외상을 작품에서 도발적이고 노골적으로 숨김없이 드러내 보인다.


즐겨 읽는 詩에서의 感興을ㅡ!

 

그는 시인 오브스트 휄다의 시를 즐겨했고 또 그는 이 시에서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 깔려 있는 심층 심리를 캐낼 수 있었다.


나는 홀로 거리를 배회했다

어린 아이들 노래를 들었다

나는 계단에 앉아 사별한 어머니를 염념했다


밖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의 그림자가

말라빠진 해골의 팔에 안겨 있는

나무 그림자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이렇게 음울한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직관하면서 정면으로 대결하는 자세로 극복했던 그의 의지를 그림으로 느낄 만큼 우리는 그 자신이 살다간 삶의 고통과 정신 병리와의 밀접한 관계를 알 수 있게 한다.

   그의 삶은 이면서 보다 보편적인 공감과 스스로의 위안을 얻으려 한 점에서 순수회화라기 보다, 일종의 예술세계에 몰두함으로서 자신의 정신분열증을 치료하기 위한 한 방편이 되기도 했다.

   이 같은 그의 독특한 표현기법은 회화뿐 아니라 조각ㆍ문학ㆍ연극ㆍ영화 등을 포함한 독일 표현주의 예술에 크나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작품 ‘절규’는 심리적인 공포와 두려움, 우울과 불안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강렬하게 뒤흔드는 마력이 혼재되어 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인간 내면의 고통과 심리적 갈등을 강렬한 색체와 구도로 적나라하게 투사해 보는 사람들에게 기묘한 흥분과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대 苦痛스러우면 絶叫하라ㅡ!


뭉크는 생전에 이 작품 앞에서 “ 나는 자연을 통해 무서운 절규를 느꼈다”

("Ich fühlt das groβe  Geschrei durchi  die Nature.")고 고백했다. 따라서 그의 절규는 결코 개인의 불만, 고독, 자기 죄에 대한 절규만이 아니었다.

   사회악을 고발하며 정의 길을 추구하는 절규인 만큼 심리적 종교적 복합적인 성격을 함유하고 있었다. 미술이란ㅡ 정면에서 그것을 응시하는 실존과 혼연일체가 될 때 미적으로 승화될 수 있다.
   뭉크는 애송시 ‘말라빠진 해골의 팔에 안겨 있는 나무 그림자를 향해’ 접근하면서 무섭게 절규를 토한다.

   ‘주님, 깊은 곳에서 당신께 부르짖습니다.’(시편 130,1)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하며 예수님의 최후 십자가상의 절규도 곧 그 같은 고독한 한의 상황에서 외치게 마련이다. 여기서 뭉크의 세기적 걸작품 ‘절규’가 그려지지 않았을까?
   뭉크 박물관에서 본 작품 ‘절규’는ㅡ 북구 혼이 살아서 빛나고 또  그들은 기나 긴 혹한의 겨울을 이 ‘절규’의 저력에 의해 고통을 이겨내는 힘을 위로 받고 있었다. 이 그림이 오슬로에 없을 때의 겨울을 생각하게 한다. 

    그대여 고통스러운가? 그러면 힘껏 소리쳐 외쳐라, 절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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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文化論

                         ■어린이는 未來요, 回歸다

                 꿈꾸는 自然資源, 幸福을 그들에게

    

날아라, 새들아. 제90회 마지ㅡ.


신선한 새로운 감격을 안겨주는 라일락, 튤립, 벽오동 꽃향기의 달 五月, 5일은 어린이의 건강과 행복을 축복하는 날이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尹石重.1911- `小波賞' 제정. 시)’ ….

    1923년 민족정신 함양을 위해 아동문학가 방정환(小波 方定煥.1899-1931) 선생이 발기한 기념일이다. 어린이 헌장.(1957년 제35회 때 공포)은 모두 9개 항이다. 전국 각지에 헌장 탑이 서있다.

    민족정신 함양의 기풍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이 화려한 기념행사ㅡ! 이 축복 받는 날의 어린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꽃이다. 사랑은 가난한 마음의 축제라고 했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일구도록, 꾸준히 보살피지 않으려는가…! 집은 있어도, 가정은 없다ㅡ. 맞벌이 부부 아이들의 표현이다. 어린 그들에게 심리적, 사회적 측면에서 무슨 기쁨과 사랑을 기대하게 할 것인가….

    그들은 도시의 소음 공간에서 소젖을 빨며 자랐기에 본능적으로 초원을 동경한다. 대인 관계와는 먼 가정의 구속 상태에서 자폐문화로 이기주의 경쟁의식만을 넓힌 그들….

    오늘의 어린이날이 갖는 시대적 참 의의는, 지난 세기의 낡은 발상에서 생각할 수 없는ㅡ 그런 혁신적인 비상업적 친숙한 프로그램을 요청한다.


世界 各國 ‘國際 어린이날’은 ㅡ?


여러 나라에서 국제 어린이날(International Children's Day)을 기념하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 아동복지 세계 회의(World Conference for the Well-being of Children)에서 1925년 제정됐다.

   유엔과 유네스코가 (1954.11,20) 세계 어린이날(Universal Children's Day)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六月1일에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곳은 보통 사회주의 국가다.

   일본은 五月5일이 어린이날 (남자 ‘단고노셋쿠’)로, 공휴일이다. 三月3일은 여자 ‘히나마쓰리’로, 공휴일이 아니다.

   캐나다의 어린이날(National Child Day)은 매년 十一月20일, 1993년에 국회 법안 C-27.7, '어린이날 법률'이 제정됐다.

   이슬람 국가들의 五月5일은 이슬람력 七月4일로 어린이날이다. 과거의 독립 이슬람 국가 가운데 독립 직후부터 어린이날을 옮긴 나라가 많다.
   아르헨티나의 어린이날(Día del Niño)은 八月 두 번째 일요일이다. 1990년 이전까지는 어린이날이 八月의 첫 번째 일요일이었으나, 八月의 두 번째 일요일로 바뀌게 되었다.

 태국의 어린이날은 매년 一月 두 번째 토요일, 총리가 보통 각각의 어린이날의 모토로 성명을 발표한다.

   북한은 어린이날이 '국제 아동절' 六月1일, 공휴일은 아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어린이날이라고 할 수 있는 날은 六月6일이다.


兒童 혼자 苛酷한 問題 解決ㅡ.


고아원 출신 장관, 군 사령관, 대학총장, 대기업 그룹회장, 그리고 일선에서 명성을 날리는 법률가, 의사, 국회의원, 문학예술가들…! 한국인은 굴 껍질 한 조각만 먹어도 동정호(洞庭湖)를 잊지 않는다고 했다.

    어린이날을 외면하는 사회단체, 왜 이들 단체는 돕는 일을 꺼리는가…?

그들이 지금 유년 시대의 은혜를ㅡ 사회에 화원하고 있음을 보는가? 마음 약한 어린이들ㅡ. 중대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래서 창안한 작품이 극기 교육이다. 혹독한 자연 속에서의 문제를 혼자 해결하는 결단력 배우기다ㅡ. 유럽의 어린이는 다들 무자비한 영화를 보면서 간을 키워왔다….

    오늘 국내에서 상영되는 폭력물은 유럽 청소년의 극기교육 시책에서 발원된 자료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어린이의 극기교육 자료가ㅡ 한국 청소년에게는 어떤 영향을 보이고 있는가?

   극기교육과 거리가 먼 잔인한 오락물로 ‘악을 본받는 모방 물’ 이라며 못쓰게 매도되고 있다. 다름 아닌 이는 한낱 문화의 차이다. 문제는 부모의 역할이다. 유년기에 윤리적 사고력이 형성될 수 있도록 익히게 해야 된다.

    맞벌이 부부의 함정은, 어린이 지능 발달을 과보호로 부모처럼 무질서하게 전락하도록 한다. 과실 없는 온유한 가정교육이 필요하다.

  

볼쇼이 댄스 팀의 퍼레이드ㅡ.


서울시내 여러 공원에서는 5일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서울 어린이대공원 〓러시아 볼쇼이 루모 댄스 팀의 퍼레이드와 리틀앤젤스 합창단, 러시아 공연단 등이 공연을 펼친다. 서울시향은 오후 7시부터 능동숲속의무대에서 음악회를 열 예정이다.

    또한 서울동화축제가 4월 27일부터 7일까지 열리고 있으며 5일 어린이날에는 ‘명사가 들려주는 동화이야기’, ‘미수다 허이령’이 들려주는 대만 태풍이야기’ 등 구연동화가 잔디광장에서 개최된다.
◇북 서울 꿈의 숲(강북구 번동 ) 〓 공연, 전시, 체험행사 등이 열린다. 마칭 밴드 ‘SMD’와 어린이 탭댄스 팀 ‘탭비’ 등이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제공한다.

   5일 오후 1시와 4시에는 꿈의 숲 아트센터 콘서트홀은 미술과 음악을 연계한 아트콘서트를 연다. 그 외에도 천연비누 만들기, 나무목걸이 만들기 등의 다양한 체험행사를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警察, 醫療陣 4739명 待機ㅡ.


◇보라매공원 〓 ‘행복한 가족사진관’과 ‘바람개비 만들기’ ‘항공체험부스’ 등의 다양한 체험부스와 함께 어린이들의 태극기 댄스, 오카리나 공연, 방송 댄스 공연 등이 함께 열릴 예정이다.

   또한 일일소방관 체험부스에서 로프매듭법과 심폐소생술 등을 무료로 배울 수 있다.
◇서울대공원 〓 5일과 6일 이틀간 공연과 전시, 체험 세 가지 테마로 구성한 행사를 개최한다. 동물원 내 메인무대에서 ‘왕 벚꽃 음악회’와 ‘서울동물원 도전 골든 벨’이 열린다.

    메인 전시관에서는 대륙별 다양한 축제 가면을 전시하고 가면 만들기, 도자기 만들기, 핸드 페인팅 등의 체험 행사도 함께 열린다. 이밖에 서울 숲, 남산, 월드컵 공원 등에서 공연과 체험행사가 진행된다.
   서울시는 1년 중 가장 많은 시민들이 공원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해 종합상황실을 마련하고 북 서울 꿈의 숲 둥 주요공원 16개소에 서울시 직원과 경찰, 의료진 등 4739명을 대기시켜 사건·사고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는 방침이다.
 


疏外와 喪失의 機會 없어야ㅡ.


어린이 지도는 사랑의 매가 최고다. 자폐문화에 함몰돼 인터넷 사이트의 어린이 포르노나 보게 하는 따위, 자유방임적으로 무관심하지 말고 진정한 의미에서 꾸준한 관심과 교육적인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통일의 주역'ㅡ 생각만 해도, 그들을 어찌 방치할 수 있을 것인가! 핵가족 사회에서의 충효 사상의 추구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이는 이상과 도덕 가치를 소유하게 하자는 데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극기력으로 사회의식을 갖출 수 있도록, 분명히 `소속감'을 길러 주어야 할 것이다. 청소년 문화, 빛나는 문화의 발전을 위해 주체성 있는 생활 감각을 회복하도록 우리 모두 각성해야 되겠다.

    우리 ‘삼국시대의 찬란한 문화와 시대정신’ 을 불러 모아 우리 청소년의 허약한 체질을 당장 개선토록 해야 된다. 해외를 다녀 본 젊은이는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고, 또 정서 감각에 뛰어난 문화 국민인가를 잘 안다.

    그런데도 왜 우리의 자주성을 해외에 과시하려는 의지보다 일본풍 같은 생활 감각에 맹목적으로 함몰 동화되려 하는가? 청소년은 상품이 아니다.

     五月처럼 사랑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흐름이 없다면ㅡ? 그것은 소외와 상실의 연속이다. 사랑은 고귀한 것!  전국 각 지방은 고독하고 적막한 미래가 없도록 올해도 어린이날에 화려한 축제를 힘차게 연출하고 있다….

     

生活에 心理的 抵抗 없도록ㅡ!


어린이날이 지나면 사랑의 매를 들자. 무자비한 극기교육에의 실습이다. 먼 훗날, 통일에 대비하기 위하여ㅡ. 어린이는 우리의 미더운 자산이다. 고아원 등 불우시설에 수용된 그들도 미래의 찬란한 주역이다.

  공동의식과 사회의식을 따로 익히는ㅡ 장소의 선택만 다를 뿐, 같은 시간에 뛰는. 참으로 피 뜨거운 한 가족이다.

    인간적 가치의 근간을 상벌로 좌우함이 없이ㅡ 바른 윤리의식을 늘 고취시켜야 한다. 건전한 가치관, 높은 윤리의식, 그 안에 우리의 빛나는 미래가 잠재해 있음을 머리끝부터 익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있어 보상(reward)만을 위해 일하려는 습관은 자주적 행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교훈을 일깨워야 할 것이다. 어떤 과제를 성과 있게 해결하려 들 때도 그 과정 자체에 대한 진지한 의미를 어린 그들에게 환기시키도록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어린이날의 보상은 물질적일 수록 좋다. 그러나 습관을 들게 해서는 오히려 자주성을 해치게 함은 물론, 관계없는 부수적인 대상에 무관심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하자나 실패가 있을 경우 가급적 강박 관념 없이 재시도의 기회를 허용하면서 힐책, 또는 벌로 교훈을 감소하게 하거나 심리적 저항을 일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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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의 날 現代의 눈

             

                                 ■富를 따르는 卑賤한 精神

                         勤勞者의 勞動環境 改善을



勤勞者의 날’은 더 아름답다ㅡ.



五月 一日은 ‘勤勞者의 날’이다. 정부는 1963년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을 제정, 대신 근로자의 날로 이름을 정하고 한국노총 창립일인 3월10일을 근로자의 날로 지정했다.

   이후 五月 一日을 노동절로 기념하는 세계 각국의 추세에 따라 1994년부터 근로자의 날을 五月 一日로 변경했다. ‘근로자의 날’은 더 아름답다.

   五月 一日 근로자의 날을 맞아 대다수 기업들이 쉬는데, 우체국은 정상 근무한다.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는 근로자의 날 전국의 우체국이 평소와 다름없이 정상 근무한다고  밝혔다.
   우체국의 근무는‘ 국민생활의 편의를 위한 것으로, 특급우편물과 소포, 택배 등 시급한 우편물은 집배원이 정상적으로 배달한다.
 
‘勤勞者의 날’을 맞아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민주당은 전국 1500만 노동자와 함께 122주년 勞動節 을 축하하며, 노동현안 해결과 노동자의 권익향상을 위해 더욱 노력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당은 균형 잡힌 노사관계를 통해 노동자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사람이 중심 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막스 베버(1864-1920)는 말했다.

   ㅡ“그리스도 정신의 바탕에는 직업을 통해 세속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곧 신의 뜻에 부합되는 것으로 근면성의 가르침이 바닥에 배어 있다”

毒性이 강한 메커니즘 時代ㅡ.

 

현대의 문화병이 크게 스트레스를 부른다. 정신적인 자극이 기질(器質)적 변화까지 충동한다. 우리의 꿈을 먹어치우는 문화병에 조우하게 했다.

   ㅡ‘뿌리 깊은 나무는 꽃 좋고, 열매 많다’는 용비어천가에 대한 향수를 두고, 왜 젊은 날 뿌리 뽑힌 나무로 삶의 좌절을 부르는가? 부귀와 명예. 영화를 향수하는 방법이 추악하면 가혹한 자기 추락의 종말을 가불할 뿐이다. 

  ‘비문화성 치욕행위’는 하나같이 독성(毒性)이 강해 치명적이다. 그리스도 교 신앙의 쇠퇴와 서유럽인의 게으름에도 불구하고 그들 나라의 생활수준은 1-20위권에 속해 있다. 이는 일을 적게 해도 노동자의 생산성이 높다는 반응이다.

  미국에 비해 프로테스탄트가 감소되고 또 그들이 일을 많이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게을러서라기보다는 노동문화에서 파생된 일련의 건강 저해 요인 탓인 줄 안다. 이는 여러 형태로 노동인구를 괴롭히는ㅡ 문화병이라는 스트레스다.

   한국도 세계적 순위 13위에 드는 나라다. 이 조사에 대한 신빙성 여부를 회의적으로 비관할 필요는 없지만 가난하거나 허세부리는 불만의 세대에게는 더욱 못 믿을 과장이다. 우리는 애써 정신건강을 위협할 이유가 없다.


 

健康을 威脅할 理由는 없다ㅡ.

  

근로환경과 정신건강ㅡ.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의 노동현장은 어떤가? 그 여부에 따라 근로자의 건강지수도 비례된다. 일터의 먼지와 배기가스의 폐열이 물리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라는 오염도를 심각하게 한다.

   그러나 지구의 자정작용에 의해 이 오염폭주 증가분이 우주공간에 폐기되고 있다. 곧 대기권 안의 물 순환에 의해 처분됨으로써 이득을 취한다. 반면에 현대 과학문명이 지하자원을 사뭇 남용하기에 자정작용이 파괴되고 있음을 근로대중은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이는 근로자의 정신건강을 위협하기에 시간에 쫓기고 메마른 세정에 소외감을 증폭시킨다. 물질에 유린돼 군중 틈에 고독하게 헤맬 수만도 없다.

   꿈과 이상을 위한 자아실현! 이에 인간 회복에의 건전한 정신력을 집중하게 한다. 근로 사회의 살벌한 분위기일수록 그 같은 집중력 없이 경쟁사회를 관리할 수 없다. 항상 자기방어에 충실하면서 진실하고 정직한 영혼을 오염되지 않도록 보전함이 첩경이다.

   현실사회에서 차별화된 영역에서 모함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환경과 교활하고 악랄한 인간들의 사회적 결과는 모함을 일삼았던 죄과로 으레 빨리 죽게 돼 있다. 그러나 그 안에 산업재해 아닌 희생은 그 누구 한 사람 없다.

 

꿈과 理想 위한 自我實現을ㅡ.

 

성경에 ㅡ`사람의 정신은 제 병을 참아 내지만 기가 꺾인 정신은 누가 견디어 내랴?‘(잠언 18,14)고 했다. 여기서 병이란, 현대의학 술어의 근로 대중이 범하기 쉬운 문화병이다. 우리 속담에서 이용되는 `호랑이'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희망이 있다. 문화병ㅡ. 호랑이라 해도 무방하다. 조금도 과소평가될 수 없게 긴박감을 준다. 이 인간의 생명을 지배하는 문화병, 그것도 `꿈'만을 발라먹는 못된 질환을 경계해야 되겠다.

  그러나 근로대중은 모함에 괴롭힘을 받아도 희한할 만큼 장수를 얻는다. 정신력이 강하고 마음이 온유해서다. ‘악인은 지옥으로’라는 명언을 상기하게 된다. 근로 기술 사회는 정직하게 행동하고 있다..

    M. T. 키케로는 [의문 론]에서 ㅡ“부(富)를 사랑할 만큼 마음 좁고 비천한 정신은 없다”고 했다. 현대는 키케로의 시대와 사뭇 다르다. 지금은 대학을 나온 근로대중도 부를 사랑하는 레저 풍조에 팽만해 있다.=5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는 소비 제1주의ㅡ. 물자가 풍족해서 지만 국내 근로자는 무얼 하는가? 사회병리 현상ㅡ. 곧 외화내허의 겉멋이 크고 작은 사회악으로 지탱되고 있는 우리의 현주소다.

   이들이 건강사회를 잠식하는 동안 우리문화는 우리의 전통과 함께 붕괴될 뿐이다.



돈과 사랑 위한 秩序維持는ㅡ?



소득향상이라는 이유만으로 배금주의를 방패삼은 가식과 허세는, 우리의 고귀한  인간정신을 송두리째 파괴했다. 너무 늦다 해도 서둘러 건강사회를 위한 도의 회복 운동에 불 지펴야 되겠다.

   물질적 쾌락 추구에의 가치관, 탈 공동체적 개인 본위 사회관, 희박한 윤리의식… 성장기 청소년의 건전한 내일을 위해 사회악 차단은 더 미룰 수 없다. 교육 방법도  이 겨레의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어야겠다.

   비리와 부조리가 바로 도의의 붕괴를 부추기며 만연되고 있다. 듣기 싫지 않는, 자본주의 국가 한국ㅡ! 그러나 돈을 사랑하는 국가와 국민이, 돈과 사랑을 위한 정의로운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가?

   인간적인 사랑ㅡ. 돈에 의해 희석됐지만, 우리에게는 이 삭막하고 황량한 시대에 사랑이 필요하다. 도덕이 우리 사회 안에 괴어 넘치기 어려워도 물욕의 갈등 안에서 번식하는 크리스털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기에 물질문명과 도덕문화의 불균형을, 시급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바로잡아 나감으로써 허황한 야욕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중대하고 심각한 선택은, 쾌락을 추구하는 개인적 욕구와 사회적 욕구 사이에 생명을 파괴하는ㅡ `인간이 죽었다'는 자기소외로부터의 곧 삶에의 사랑이지 않겠는가!



거짓의 悖德 强力 剔抉해야ㅡ.

 

국내 외국근로자들의 생산 활동 참여나 임금소득의 지출 면에서 국민경제에 총생산과 부가가치를 유발하고 있다. 2005년 4824억 원에서 2011년 8조3478억 원으로 급등했다. 2005년 0.02%에서 2011년 0.2%로 증가했다.

  외국근로자의 국내 소비지출은 부가가치(GDP)를 창출해 분석기간 중 그들의 소비지출에 따른 부가가치 유발효과는 2조6817억 원, 그러니까 국민경제 전체 부가가치의 0.04%, 노동부가가치의 0.08%에 해당한다.
  
외국인 고용이 내국인 일자리를 잠식한다고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보완하는 효과가 더 크다. 외국인 고용이 내국인근로자의 임금 및 근로조건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국내의 비정규직은 860만 명을 더 웃돌고 있다. 이들을 방치해 둘 수 없다. 항상 이날이면 반복하지만 노·사·정이 핏기 따끈한 한 가족으로 오순도순 현명한 대안 찾아 해법 도출에 고통을 덜어나가야 할 것이다.  

   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매야한다. 1년 사이 공기업 부채가 61조라니 국가채무보다 많다. 자산이 늘어난 때문이라지만 공공기관 연금은 답보상태다. 이는 그만큼 절제를 외면한 채 방만한 경영을 하고 있는 결과라고 하겠다.

  일부 건설업의 경우 재외동포 외국인근로자의 고용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업주가 23.8%나 돼 근로청소년의 생활과 교육과 함께 내국인 일자리 보호를 위한 정부의 세심한 정책적 대응이 요구된다.

글로벌 코리아라는 美德을ㅡ!  

 

대한민국을 글로벌 코리아로 만들려면 처세의 미덕을 긍지로 하기 위해 거짓의 패덕(悖德)을 척결해야 한다. 공론(公論)에 쫓기면서 VIP의 역린(逆鱗)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패덕에 치우쳐도 안 될 것이다. 

   노련한 연금사(鍊金師)처럼 침착하게 지혜로운 자세로 국가적인 때(塵垢)를 세척하기에 주력할 때, 위대한 전진을 꾀할 수 있다 .상대방의 약점이나 자극성을 피한다는 배려는 노련한 처세술이며 일종의 미덕이다. 

  우리나라는 외국인의 비율이 급속하게 증가하는 경향이다. 벌써 '다문화사회로 이행되고 있다. '저소득층, 비숙련 노동자인 신규 이주민이 자국의 저소득층과 일자리 경쟁 에 부작용이 드러난다.

   다양한 인종의 유입에 따른 언어, 문화, 종교적 갈등으로 심각한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다문화사회로의 지향이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를 국가정책 혹은 이념으로 택할 것이지는 주목되고 있는 시점이다.

   지난 10년 정부는 다양한 다문화정책을 내놓았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다문화주의를 채택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나 다문화주의 정책이 불가피 하겠다

   M. T. 키케로는 [의문 론]에서 ㅡ“부(富)를 사랑할 만큼 마음 좁고 비천한 정신은 없다”고 했다. 현대는 키케로의 시대와 사뭇 다르다. 지금은 대학을 나온 근로대중도 부를 사랑하는 레저 풍조에 팽만해 있다.



謀陷 따른 勤勞者 犧牲 없게ㅡ.

  

근로환경과 정신건강ㅡ.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의 노동현장은 어떤가? 그 여부에 따라 근로자의 건강지수도 비례된다. 일터의 먼지와 배기가스의 폐열이 물리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라는 오염도를 심각하게 한다.

   그러나 지구의 자정작용에 의해 이 오염폭주 증가분이 우주공간에 폐기되고 있다. 곧 대기권 안의 물 순환에 의해 처분됨으로써 이득을 취한다. 반면에 현대 과학문명이 지하자원을 사뭇 남용하기에 자정작용이 파괴되고 있음을 근로대중은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이는 근로자의 정신건강을 위협하기에 시간에 쫓기고 메마른 세정에 소외감을 증폭시킨다. 물질에 유린돼 군중 틈에 고독하게 헤맬 수만도 없다.

   꿈과 이상을 위한 자아실현! 이에 인간 회복에의 건전한 정신력을 집중하게 한다. 근로 사회의 살벌한 분위기일수록 그 같은 집중력 없이 경쟁사회를 관리할 수 없다. 항상 자기방어에 충실하면서 진실하고 정직한 영혼을 오염되지 않도록 보전함이 첩경이다.

   현실사회에서 차별화된 영역에서 모함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환경과 교활하고 악랄한 인간들의 사회적 결과는 모함을 일삼았던 죄과로 으레 빨리 죽게 돼 있다. 그러나 그 안에 산업재해 아닌 희생은 그 누구 한 사람 없다.

 

外華內虛의 겉멋이 社會惡ㅡ.



성경에 ㅡ`사람의 정신은 제 병을 참아 내지만 기가 꺾인 정신은 누가 견디어 내랴?‘(잠언 18,14)고 했다. 여기서 병이란, 현대의학 술어의 근로 대중이 범하기 쉬운 문화병이다. 우리 속담에서 이용되는 `호랑이'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희망이 있다. 문화병ㅡ. 호랑이라 해도 무방하다. 조금도 과소평가될 수 없게 긴박감을 준다. 이 인간의 생명을 지배하는 문화병, 그것도 `꿈'만을 발라먹는 못된 질환을 경계해야 되겠다.

  그러나 근로대중은 모함에 괴롭힘을 받아도 희한할 만큼 장수를 얻는다. 정신력이 강하고 마음이 온유해서다. ‘악인은 지옥으로’라는 명언을 상기하게 된다. 근로 기술 사회는 정직하게 행동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는 소비 제1주의ㅡ. 물자가 풍족해서 지만 국내 근로자는 무얼 하는가? 사회병리 현상ㅡ. 곧 외화내허의 겉멋이 크고 작은 사회악으로 지탱되고 있는 우리의 현주소다.

   이들이 건강사회를 잠식하는 동안 우리문화는 우리의 전통과 함께 붕괴될 뿐이다.

   다시 맞는 五月一日! 교황 비오 12세는 1955년 선포한 ‘노동자 성 요셉’의 기념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요셉 성인을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로 우러르고 있다. 경건한 하루가 됐으면 한다.

  


五月이 온다 文化論

          

      ■五月, 팬 플루트의 和音으로

     알찬 멋 꿈꾸는 草原의 薔薇


精巧한 幻想, 妖精의 춤이여ㅡ!


五月이 온다. 나의 아파트 뜰은 五月이 밟고 오도록 겹 벚나무 핑크 빛 꽃잎을 훤칠하게 깔았다. 성장한 나무마다 녹색 의상으로 윤기가 흐른다….

   우리의 연인은, 귓전에 울려오는  L. V. 베토벤의 requiem《미사 솔렘니스》여라ㅡ! 월말이요, 주초… 남부의 들녘은 바람과 햇볕에 영근 팬 플루트의 화음으로 청 보리 잎이 부시다.

   혈홍색 꽃구름 철쭉 위를 낮게 스쳐나는 산제비의 날렵한 선율에 풀무질 하는 아지랑이를 일렁이게 한다. 장미의 五月은, 그렇게 영웅 서사시의 돌풍 속을 질주해오고 있다.

   길길이 솟은 초고층 빌딩의 후박나무마다 송이, 송이… 모란처럼 하얗게 꽃이 피어 첫 여름의 기쁨을 구가하고, 라일락은 매혹적인 향기를 바람에 날린다…. 보라, 五月을 환영하는 길목은 이 얼마나 부시도록 황홀한가ㅡ!

   계절은 이래서 그 독창성을 읽게 하는지 모른다. 빌딩이며 가로수, 전신주ㅡ 할 것 없이 새 계절이 오는 길목에 일제히 도열해 있다…. 그리고 거기 눈부신 꽃과 푸른 숲, 꾀꼬리 종달새, 뻐꾸기를 五月이 오는 발자국마다 함께 풀어놓은 것을…!         

 도시의 五月은 정교한 환상과 요정의 춤으로 꿈과 이상이 교직되는 음계와 무늬에서, 4분의 3박자의 감격, 또 환희에 찬ㅡ, 화려한 3성의 푸가(fuga)를 높이 울리며 온다. 다함께 사랑의 기쁨을…!

 

感動 보듬는 버라이어티로ㅡ


五月은 한권의 수신 교과서다. 저 향기로운 울림…! 인간 정신의 착란, 불안, 리듬의 무궤도에서 교훈적 정조를 일깨운다. ‘인간’을  만들기 위해 환상의 경고로, 무의미한 오만·난폭·편협·탐욕을 혐오하듯 그렇게 군림한다.

 五月의 캘린더는 아무리 잘난 체해도 결과적으로 한 줌 흙에 지나지 않는 인간을 즐겁게 하기 위해 기념일, 발표회, 민속축제로 버라이어티를 기획했다…. 이달은 한해의 절정을 이루는 성장의 극치를 과시한다.

 그러나 ‘五月’에 매료되는 반응은, 우리 사회의 유지와 이 나라의 발전과 이 겨레의 영생이 우리 가정의 온존과 존엄에 있다는 진리를 불러일으킨다. 이로 해 가정 파괴의 제도나 사상이란 철저히 배격될 수밖에 없다….

 

1 일 勤勞者의 날.

5 일 어린이날. 

6 일 立夏.

8 일 어버이날. 세계적십자의 날.

11일 入養의 날.

15일 스승의 날.

18일 五·一八 민주화운동 기념일.

19일 發明의 날. 

21일 성년의 날. 夫婦의 날. 小滿.

25일 防災의 날.

28일 부처님오신 날.

31일 바다의 날. 


 가정에서 중심은 부부다. 이질적인 남녀가 공통된 이해와 서로 돕는 필요에서 참고 견디며 사랑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부부는 살면서 최고의 행복을, 더러는 잊는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자기 마음 안에 있다.

  “산 너머 저 멀리 행복이 있다네”라는 칼 뷔세(1872-1918) 의 시는 인간의 속절없는 환멸을 비웃고 있을 뿐이다….


마음의 平和, 얼의 르네상스ㅡ.


이팝 꽃 하얗게 피는 五月, 왁자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거리의 아이들은 우선 외로움이나 절망의 고통이 눈빛에서 거세돼 좋다. 설령 은폐돼 있다한들 어떠랴.

  다행히 밖으로 흘리지 않아 착하다. 그들의 가슴을 애써 열면 괴로운 욕망이 숯 껌정으로 색칠해져 있을지라도ㅡ. 

  

소르르 바람의 향기


숲길 골짜기

꿩 울음 저만큼 풀에 젖고


개울 따라 뜀박질 서둘면

내 작은 5월이 흐르네


어디서 날아왔을까

초롱꽃 헹구는 예쁜 물새집을 나설 때는



빈 하늘 커가는 꿀벌 따라

아지랭이 부시게 떠간다.


         朴馨丘/五月을 만드는 아이들

               (월간「文藝思潮」1993. 5월호)

   

   五月의 막이 오르는, 이제 황홀한 드라마 때문일까? 공상의 감정, 인식, 의지가 수반된 맹렬한 불꽃같은 강렬한 자아로 일렁이는 눈빛…! 五月이면 아이들 뿐 아닌, 모두가 이 계절에 의식하는 아름다운 갈등을 눈앞에 본다.

    마음의 평화, 정신의 르네상스…! 五月은 벌써 그 여운에서 으쓱 매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他人을 먼저 생각하는 삶을ㅡ.


우리는 노동자의 아버지로 성 요셉을 잊지 못한다. 예부터 성 요셉을 위해 `장인의 날'이 있었고, 뒤에 이 날(5월1일)이 메이데이로 확대됐다.

 이는 비단 ‘근로자의 날’이 아니라도, 노동의 신성성과 함께 교회정신에 입각한 노동사회 구현으로 인간 본연의 목적을 다 하려는 데 있다. 노동의 신성성을 멀리할 때 어찌 정신력이 성숙해 질 것인가?

  아니다. 영혼이 더욱 부패된다. 개인은 공동의 노동에 참여해 타인을 돕는다고 생각하겠지만ㅡ 실상 그것에서 소속감을 생각할 수 있고, 노동의 즐거움을 발견하고 남는다.

  남을 위한 봉사 (voluntary agent),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봉사가 아닐 것이다 노동은 생명이요, 사상이며 광명이다(V. M. 위고)ㅡ. 하느님 말씀으로 여기 그 메시지를 알린다.

   ㅡ`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오 복음 7, 2). 성경은 그렇게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삶을 바란다.

  C. P. 파크하스트의 『설교집』은, 노동을 종교의 시녀로 적었다. 그만큼 신성하다는 의미다. 기도하는 시간에는 결코 신이, 영원한 휴식 아닌, 영원한 생명으로 머물고, 노동을 할 때는, 노동으로 모든 것을 정복하게 해 준다….

   

幸福은 分數를 가리지 않아ㅡ.

  

五月은, 당신 앞으로 온ㅡ 명절 기념 우편 소포다. 이를 받고 누구의 충동을 듣지 않고서도 대뜸 축제 기분에 들뜬다. 젊은이에게는 희망의 환영(幻影)으로, 노인에게는 회상의 환영으로 포장된 축하선물이다….

   그 때문일까?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행복하다ㅡ. 어느 예술가의 집 아틀리에에 걸린 전각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ㅡI am happy that thinks myself.

실상 양식 있는 문학 예술인이나 학자는 이렇다 할 조건과 관계없이 그렇게 자기를 평가한다.

때문에 행복은 실상 분수를 가리지 않는다. `가난할수록 복이 있다' 해서 은행 융자로 17평 아파트의 문을 넓힌다고 그것이 행복의 문이라고는 보장되지 않는다.

한국인은 승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거만하다. 그러나 五月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부활의 계절로 평준화를 모색하게 한다. 그래서 각자에게 부여되는 행복은 바람의 성분이 없지 않다….

바라는 사람에게 건너갈 때는 그 배분에 대해 조금도 탓하지 않는다. 기쁨과 만족ㅡ 인색한 욕망일 테지만 우리는 그것이 순도 높은 함량인지, 도금인지를 식별할 수 있어야 옳을 것이다.


알찬 멋으로 生活의 風流를ㅡ!


인간은 젊을 때 천사, 늙으면 악마(D. 에라스무스) 라고 했다ㅡ. 늙음에 대한 저항과 파괴력…! 무릇 생물은 보다 큰 파괴력에 의해 보다 큰 생산성이라는 적대적 요인을 낳게 된다.

  五月의 이치는, 싫거나 말거나 죽음으로 그렇게 부활하는 새 삶을 내놓는다…. 생존하는 짧은 기간, 그러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육신의 외모와 고상한 내면의 지성을 겸비해야 할 것인가를 중시하게 한다.

  사랑을 하고 있는 젊은이에게는 선택의 계절이다. 五月을 아름답게…, 햇살은 뜨겁고 지열은 화끈하고 녹음은 즐겁다. 생동하는 환희의 도취와 육체미를 과시하는 독창성이 최대한 허용되는 시기다.

  “모두 행복하라” 고, 五月은 우리에게 귀띔한다. 옛 어른들이 행복의 극치로 정의하는 ‘오복’에 수·부·강녕이라는 육체적인 분야와 攸好德·考終命이라는 정신적 명제를 한데 묶었던 그 형안을 상기시키듯이….

  ㅡ‘五月이면 으레 나는 꿈꾼다. 여인아, 네 눈은 초원의 장미…’  누가 악마이기를 바랄 것인가?  그렇게 로맨틱한 황홀함을 노래하는 五月 첫여름, 아카시아 꽃이나 등나무 꽃등(花燈) 아래 주렁주렁 반짝이는 알찬 생활의 멋을 설계하지 않으려는가…?

  삶에 멋스러운 예술성을 주입하자는 권유는, ㅡ단순한 예기(藝技)를 얻자는데 그쳐버릴ㅡ  결코 낡은 세속적인 의미가 아니다.


두만강 現代의 눈

                        ■‘눈물 젖은 豆滿江’

                내 어린 날의 흘러간 노래


豆滿江 칼럼에 글을 쓰면서ㅡ.


인터넷 항로에 황홀해 있다가 발견한 기항지 길림신문 포럼 두만강 칼럼ㅡ.지난날 현업시대부터 관심 깊게 글을 써온 칼럼이었기에, 또 ‘두만강’이라는 친숙한 이름이 흘러간 가요로 옛 향수를 흠뻑 불러일으켰기l에 반가웠다.

   豆滿江(tumen river)ㅡ. 연륜 없는 인간시대에 현지에 가보지 않았어도 노랫말을 통해 아련히 뇌리에 펼쳐지는 구도에서ㅡ 짙어가는 가을, 단풍이 물든 강 언덕에 밤새, 우는 달빛 따라 뱃놀이를 즐기고 남았다….

   작사가 김용호의 노랫말이 계절적인 애수에 흔들려 자칫 산란해지는 심경에서 사무치는 판타지로 떠나간 그 님의 그리움에 오버랩 돼 가슴을 적셔야 했던 이시우 곡, 김정구의 노래를 즐겨 외울 수 있었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던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 오려나ㅡ!


   트로트지만, 매우 잘 나갔던 가요였다. 나는 여기서 『豆滿江』의 곡 연출이나 가사의 액션에 저촉할 의향은 처음부터 피하고 있다. 다만 그 강이 지닌 하나의 이미지 볼륨을 풀어보고 싶다.


70년 前, 내 꿈 일깨운 豆滿江ㅡ.


이 노랫말은 1930년대 金容浩(1912. 馬山. 明治大)시인이 나라를 잃고 헤매는 젊은이의 그녀(조국)에 대한, 豆滿江의 한(恨)을 띄운 영탄의 독백이다. 방황자의 망향을 달래는 스산한 혼의 연소(燃燒)를 별리의 정에서 본다.

   한편 1930년대의 가을, 극단 《예원좌(藝苑座)》를 이끌고 길림성 도문시 어느 여사(旅舍)에 머물면서 李時雨(1938. 巨濟. 早稻田大) 작곡가가 이곡을 내놓았다. 비실용적 몽환의 세계 아닌, 豆滿 강변에서ㅡ.

   낭랑한 목소리의 천재 金貞九(1916. 元山·문화훈장 寶冠章 80) 가수가 1938년 오케 레코드사에서 취입했다. 민족가수(1932-92)로 활약. 82세로(98) 미국에서 세상을 떴다. 위의 三人組는 천추에 빛날 불세출의 영웅이다.     물에 뜬 밤배는 달빛과 함께 매혹적인 낭만을 추스른다. 거기에 일련의 그리움이 엷게 아른거리듯 괴이한 정감으로 잊어진 생각들을 마구 풀어내 다시 어우르게 하는 흡인력을 자극한다. 내게 반백 년 전, 꿈을 일깨운 두만강이다.

   수원은 몰라도 강은 여전히 흐른다(R. 푸엥카레)…. 백두산에서 북동쪽으로 관북지방 324mile(547.8km)을 흘러, 흘러 은성을 굽이돌아 한·중·러 국경지대를 지나다가 훈춘 남쪽 동해로 나간다.


嗚咽 안은 나의 榮山江 哀歡ㅡ.


강은 그렇게 나의 생각을 일렁이게 하고 있다. 울고 싶은 정감이 있기야 하겠는가만 이제 달려가 숲과 초원을 스쳐가는 강물에 조용히 두 발을 담그고 나를 맞는 감상을 수온으로 느껴보고 싶어지는 그리움을 부추긴다.

   유 소년기부터 나의 영산강은ㅡ, 강물을 떠서 훌쩍여 혀끝에 감미로운 풍미를 무늬지게 했지만 지금은 아예 七月의 손뼉 치는 강에 전신을 알몸으로 바친다. 강은 나를 빠뜨리고, 치올리며, 온갖 응석을 다 받아냈다….

   ㅡ秋月山을 떠날 때만 해도 바람에 흔들리는 부초와 푸르름이 거꾸로 구름처럼 서늘했지…. 서정이 무늬 지는 강, 장성, 관주를 지나는 사이 활옷 날개는 겨드랑이마다 은비늘 부시도록 물새들 모여들었고,      낡은 고깃배 함평, 무안 강나루 돌아 미끄러질 때, 세월의 여윈 손아귀는 투망마다 튀는 지느러미의 물보라로 흔들거렸지. 아ㅡ 투명한 햇살이 머문 갈대 숲 물이랑을 스쳐오는 뻐꾸기 소리…,

   저 목 갈린 울음소리는 해마다 이맘때 어김없이 피를 토했지…. 페놀·오폐수로 강바닥이 문드러지면서, 온 몸에 강의 역사를 비늘로 두르고 태풍과 홍수의 범람을 이겨내던 수궁의 환상도, 그 아름다운 지느러미 끝에 머물렀을 연정도 갈가리 포개진 애환으로 남겨두고 불귀의 놀 아래 무너졌지…. 누구였나, 이 강을 칠성판에 누이게 한 것은?


江이여, 사랑아, 나의 힘이여….


四月 들어 ‘두만강 칼럼’에 14일자부터 월말 가까이 스물 네 편째 써오는 습작은 미흡해 곤혹스럽지만 나의 고연명(古硯銘)을 남기듯 두만 강물에 밑글을 헹구고, 가지런히 이를 걸러내 놓곤 한다.

   글을 쓰는 사이 장미 향기 머금은 구름의 침묵이, 저 맑고 정기 어린 물바람에 쉴 때ㅡ. 수면에 물든 사유와 논리가  그렇게 시간이 멎어버린 평온한 분위기에 바라져 차라리 잿빛 우수로 무겁기만 하다.

   은은히 들려오는 강물의 저 뱃고동 소리에서 새 다짐이 열리고 보면, 부드러운 햇살 더운 숨소리 울리는 바람에도 구름 안에 서성이며 갈 곳 잃은 태양이 어느 선착장 갈대 숲 끝자락에 기적 같이 빛살을 뿜어낸다.
    오너라, 네 차디찬 흰 이빨 고추 세운 강물사자여, 어서 달려오너라! 물결은 포말을 물고 기세 있게 쳐들어왔다가는 제례의 주문이 두려워 이내 훌쭉하게 늘어져 기슭에서 꼬리를 뺀다.

   작은 강제비들이 떼 지어 울며 멀리 도망치는 물 꼬리 쫓아 저만큼 화려한 춤사위로 삶의 미래를 물고 오리니…. 밀려오는 석양 바람이여!
  아- 살아 있는 강 포구, 뱃사람들 물비늘 위에 고깃배를 띄운다. 영원하라 강이여, 사랑이여, 나의 힘이여….


運營者님께 感謝를 드리며ㅡ.


칼럼 독자 앞에 진심으로 고백합니다. 천학비재하고 덕이 부족한 소인이 ‘豆滿江 칼럼’에 의견을 올리는 작업에 참여해 송구한 마음뿐입니다.

   저는 신문 독자의 열광적인 성원과 지도편달 아래 오늘의 춘추 정신이 당면한 정수(精髓)로써의 혼을 더욱 빛나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저의 졸필은 吉林新聞 고급지의 위치가 오염되지 않는 시각에서 온 힘을 다해 질의 미디어로 진실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도식주의를 탈피한 행동 집단의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로 거듭나려는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언론을 위요한 상황은 자주규제에 거는 지적 승부가 태만해서는 안 되며 동시에 기회를 따라 금기(taboo) 돌파에의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터부가 온존되면 대중의 알 권리를 은밀히 침식하게 됩니다.

    알 권리를 자각하게 하려면 거기에는 모험된 도전이 요청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 德庵을 향후 양질의 진실한 프로그램 생성을 위해 사색과 행위의 급원지이면서 축전지로, 행위의 집단을 강화해 나가게 밀어주십시오.

   시대는 달라지고 있습니다. 인간주의, 인문주의, 평화주의, 삶의 질이 강조되는 미디어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습니다. 한국 남부의 일우에서 무력한  지원자, 무명의 기록자가 일그러진 삶의 표면을 부단히 수정하고 싶습니다.

    국민이 깨어 있는 곳에 이 사람도 조심스럽게 깨어 있습니다. 거듭 지도와 편달 부탁드리며 맺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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